혁신 스토리 10
Innovation을 사명(社名) 으로 삼은 SK이노베이션의 정체성은 ‘도전과 혁신’입니다. 기업가정신학회가 정유사업
공기업으로 출발해 창립 60주년을 맞은 SK이노베이션의 60년 성장 비결을 연구했습니다.
60년 성장은 빅픽처와 딥체인지로 이뤄낸 끊임없는 혁신의 결과이며, 그 밑바탕에는 SK 고유의 SUPEX추구정신과
SKMS가 있다는 것이 연구자들이 내놓은 분석입니다. 10가지 혁신 스토리를 학자들의 객관적 연구를 기반으로 요약했습니다.
01
원대한 도전과 창조의 기업가정신 발현
석유사업 진출
1980년, 선경(SK의 전신) 이 자신보다 수백 배나 큰 대한석유공사를 인수하자 ‘새우가 고래를 삼켰다’는 얘기가 나왔다. 당시 일반인들에겐 섬유업체로만 알려져 있던 선경이 정상적으로 기업을 운영할 수 있을지 회의적으로 보는 시각도 많았다. 그러나 준비된 새우는 고래도 삼킬 수 있었다.
선경은 1966년 5개년 개발계획을 세우고 전량 수입에 의존하던 원사를 직접 생산하는 제조 공장을 짓기로 한다. 1968년 아세테이트 원사공장을 완공하고 1969년 폴리에스터 원사공장까지 건립하면서 단숨에 국내 1위 원사 메이커로 뛰어올랐다. 원사의 원료인 원유에 관심을 기울인 건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1973년 선경석유를 설립했으나 예기치 못한 중동전쟁 발발로 정유공장 건설이 무산됐다. 1, 2차 오일쇼크로 국가 원유 재고가 열흘 치 밖에 안될 정도로 급박했던 시기, 선경은 사우디 왕실과 꾸준히 쌓아둔 친분을 바탕으로 한국에 원유를 도입했다. 나라 전체에 필요한 원유량을 웃돌았다. 원유사업으로 한국 경제를 살려야 한다는 사업보국 정신이 발휘된 것이다.
“SK이노베이션은 긴 호흡을 갖고 먼 미래를 내다보면서
체계적·계획적으로 준비하는 혁신 경영을 시행했습니다.”
이춘우 | 서울시립대학교 교수 / 기업가정신학회장
1986 최종현 SK선대회장 내한한 사우디아라비아 야마니 석유상과 자리
“SK이노베이션은 그 당시에는 상상할 수도 없었던 미래를 치밀한
분석 하에서 그려내고, 이를 위해 끊임없는 자기혁신을
만들어냈습니다.”
김상준 | 이화여자대학교 교수
1991.6 울산CLX 신규공장 합동준공식
02
‘석유에서 섬유까지’ 석유화학 빅픽처 경영
수직계열화
1973년 선경직물 20주년 창립기념식에서 최종현 SK 선대회장은 ‘섬유에서 석유까지’ 수직계열화를 천명한다. 정유사업은 선경의 생존과 성장에 필수불가결한 사업임과 동시에 경공업에서 중화학공업으로 전환하던 우리 산업발전 단계와도 부합하는 미래사업이었다.
1980년 유공 인수로 석유에서 섬유까지 수직계열화를 실현한다. 다양한 구성원이 같은 목표를 갖고 나아가려면 효과적인 경영 관리 체계가 필요했다. 최종현 회장이 1979년 선포한 SKMS는 인사·재무·기획 등 일상적인 관리요소를 포함해 일을 대하는 자세·의욕에 사교 방법 등을 두루 포함하고 있는 실전 경영 교과서다. 공기업이던 유공에도 이를 적용해 혁신적 기업으로 탈바꿈시켰다. 비전을 실천하는 기반은 기술과 경험이다. 1985년 울산기술지원연구소를 설립해 기술개발에 매진했다. 1984년 방향족공장 건설에 착수, 1991년 울산컴플렉스 9개 신규공장 합동준공으로 수직계열화를 완성했다. 임직원과 미래 비전을 공유하며 큰 그림을 그리는 빅픽처 경영은 에너지화학 수직계열화, 정보통신과 반도체 진출 등 그룹 포트폴리오의 외연 확장에 큰 원동력이 됐다.
03
원대한 도전, ‘대한민국을 산유국으로’
무자원 산유국
1973년과 1978년. 두 번의 오일쇼크로 원유가격이 급등해 전 세계 경제가 휘청였다. 안정적으로 원유를 수급하려면 해외 석유 광구를 직접 개발해야 했다. 하지만 탐사에 오랜 기간과 막대한 비용이 들었다. 성공 확률도 낮았다. 유공은 1982년 3~4명의 자원개발 전담 요원을 종합기획실에 배치하고, 이들을 주축으로 ‘무자원 산유국 프로젝트’를 가동한다. 이들 역시 개발 사업 경험은 전무했다. 여러모로 리스크가 컸지만 최종현 회장은 “미래 성장 동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수업료가 필요하다”며 실패에도 책임을 묻지 않았다.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선진국의 전문 기업이 진행하는 사업에 지분을 투자하는 방식을 택했다. 1984년 세번째 개발사업인 북예멘 마리브 광구에서 마침내 초대형 유전이 발견되며 대박을 터뜨렸다. 현재 SK이노베이션의 해외 석유개발 사업은 연간 매출 1조원을 돌파할 정도로 성장했다. 약 40년간 34개 국가에서 100여개의 사업을 수행했으며, 사업 성공률은 10%로 당초 예상치인 5%를 훌쩍 뛰어넘는다.
“SK이노베이션의 혁신은 우리나라 다른 기업들의 경영철학 등에도 많이 파급됐습니다.”
김현욱 | KDI국제정책대학원 교수
1988.1 북예맨 마리브에서 생산한 원유를 싣고 입항하는 Y위너호
“혁신이 성공하려면 시장 진입 이후의 역량 개발이 중요합니다. 윤활기유사업은 좋은 성공사례입니다.”
배종훈 | 서울대학교 경영전문대학원 교수
2011.11 스페인 렙솔과 윤활기유 합작공장 준공 합의
04
세계 1등 YUBASE, 고급 윤활기유 게임 체인저
윤활유사업
유공의 윤활유 사업은 만년 적자에 허덕이는 사업부였다. 1980년대 후반 산업자율화가 이뤄지자 당시 쌍용정유가 윤활기유를 직접 생산하면서 가격 경쟁을 유발하며 충격을 줬다. 수입 윤활기유를 가공한 윤활유 국내 유통만으론 승산이 없었다. 유공은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던 고급 윤활기유 대량 생산에 도전한다.
1993년 전사 TF를 구성해 그룹 3 윤활기유 개발, ‘U-프로젝트’에 시동을 걸었다. 새로운 윤활기유 제조 공정(UCO, UnConverted Oil Technology) 을 개발해 생산량을 탄력적으로 조절하고, 시설 구축 비용도 크게 줄일 수 있었다. 1995년 마침내 고급 윤활기유 ‘유베이스’의 대량 생산에 성공한다. 유베이스는 질소와 황 함유량이 낮아 환경 규제가 강한 유럽에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 글로벌 윤활유 기업인 캐스트롤(Castrol) 에 유베이스 납품을 성공시키며 판로를 개척했고, 인도네시아 국영기업 페르타미나, 스페인 정유사 렙솔 등과 합작사를 설립해 글로벌 초과 수요를 해결했다.
05
국내 첫 배터리기업, 미래를 앞서간 도전
배터리사업
유공 인수 2년 뒤인 1982년 12월 9일. 최종현 선대회장은 유공의 부·과장급 간담회에서 ‘종합 에너지 회사’라는 비전을 제시했다. 석유는 지하자원이라 한계가 있고 공해 문제가 뒤따르기 때문에, 10년 후에는 정유사업 비율이 다른 에너지 사업에 비해 낮아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메시지였다. 당시 포트폴리오의 하나로 ‘에너지축적 배터리 시스템’을 꼽은 게 출발점이었다.
1985년 설립한 울산기술지원연구소가 배터리 산실이 됐다. 1991년 태양전지를 이용한 3륜 전기차 성능 실험에 성공했다. 2004년 말 세계 세 번째로 고용량 리튬이온 전지 분리막(LiBS·Lithium ion Battery Separator) 독자기술 개발에 성공한다. 수십년간 축적해온 석유·화학기술을 새로운 분야에 응용한 덕에 속도를 낼 수 있었다. 2009년 다임러 그룹 산하 미쓰비시후소 배터리 공급계약 체결을 시작으로 유수 전기차가 SK의 배터리를 장착했다. 2021년 분사한 SK온은 전기차용 고성능 배터리 점유율 글로벌 5위 기업으로 성장했다.
“종합에너지기업이라는 비전을 정하고, 수많은 실패 위험에도 이를 실천에 옮긴 것은 SK만의 ‘딥체인지’ 정신 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지환 | KAIST 테크노경영대학원 교수
유공의 첨단 축전지 개발 기사(매일경제, 1991.12.13)
2012.9 배터리 서산공장 준공식
“기업이 성장하려면 끊임없이 혁신해야 합니다. 중한석화 사례 연구의 핵심도 기업의 본질은 혁신적인 운영에 있다는 점입니다.”
표민찬 | 서울시립대학교 교수
중한석화 빌딩
중한석화 공장 전경
06
석유화학기업의 성장 드라이버
글로벌 파트너링
중한석화는 SK이노베이션의 자회사 SK지오센트릭과 중국의 국영 에너지 기업 시노펙의 합작사다. 중국 후베이(湖北) 성 성도 우한(武汉) 에서 화학제품을 연간 320만t 생산한다. 굳게 닫힌 중국의 빗장을 여는 데 성공한 결과다.
SK는 1990년대부터 중국 사업의 장기적 비전을 마련했다. SK에 맞먹는 ‘또 하나의 SK’를 중국 안에 만드는 ‘차이나 인사이더’ 전략이다. 오랜 노력 끝에 2011년 시노펙과 MOU를 체결하고, 2013년 합작법인 중한석화 설립 계약을 맺는다. 중국 시장에 직접 진출해 현지 기업과 경쟁하며 갈등을 유발하기보다는 글로벌 파트너링을 맺고 동반성장 하는 전략을 택했다. 중한석화 설립 초기부터 ‘경쟁력 강화 TF’를 중국에 파견해 원가절감 노하우를 전파하고, SK의 경영철학(SKMS) 도 이식했다. 중한석화는 후베이성의 최대 석유화학 기업으로 성장했다. 2022년 총자산이 258억 위안(한화 약 5조1000억원). 직원도 2800여명에 달한다. 국가경제는 물론 지역경제에도 이바지하고 있다.
07
신약개발, 새로운 성장엔진을 찾아서
바이오사업
바이오 분야는 극단적인 기다림 자본(patient capital) 을 투자해야 하는, 실패의 위험이 매우 큰 분야다. 보통 10∼15년의 긴 시간과 1∼2조 원 이상의 비용이 들고, 5000∼1만 개 후보물질 중 1개 정도만 시판 가능한 신약이 된다. SK바이오팜은 신약 개발, 임상, 제조, 판매를 단독으로 이룬 국내 유일 기업이다. 중추신경제질환(CNS) 시장에 지난 10년간 신약 출시한 13개 회사 중에 신규 진입에 성공한 유일한 회사이기도 하다.
바이오 사업 진출에는 최종현 SK 선대회장의 의지가 크게 작용했다. 당시 제약업계는 복제약 제조에 치우쳐있었다. 대기업이 제약업에 뛰어든다면, 신약을 개발해 국민 건강권을 지켜야 한다는 게 최종현 회장의 뜻이었다. 1993년 P프로젝트가 시작된다. 대덕기술원에 신약개발 조직을 꾸리고, 미국 동부 R&D센터에서 중추신경계 신약개발 연구계획을 세운다. 기나긴 투자는 2019년 마침내 열매를 맺었다. 수면장애 신약 솔리암페톨(YKP10A) 과 뇌전증 치료 신약 세노바메이트(YKP309) 로 국내 최초 FDA 신약 2건을 획득했다.
“혁신은 그저 아이디어만으로 되는 것은 아닙니다. 지난 60년간 SK이노베이션의 성장은 비전 테이킹의 성공이고, 변화관리의 성공입니다.”
배종훈 | 서울대학교 경영전문대학원 교수
1995.5 대덕기술원 준공식
“기업이 사회, 환경 생태계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최소화해야한다는 절박함이 SK이노베이션의 사회적 가치 경영을 이끌어가는 원동력이라 생각합니다.”
한준 | 연세대학교 교수
2006.4 울산대공원 완전개장 당시 전경
2012. 4 이사회
08
ESG 선도, 지속가능의 행복날개를 펴다
ESG 선도
SK는 1980년 유공을 인수할 때부터 ESG 경영의 씨앗을 뿌렸다. 단순히 환경법을 준수하는 기업을 넘어 환경 보존에까지 기여하자는 게 당시 목표였다. 1988년부터 400억 원을 들여 환경종합관리체계를 구축했다. 정부 규제치보다 10배 이상 깨끗하게 폐수를 처리하는 시설을 설치하는 등 환경 문제와 대안 에너지에 과감히 투자했다.
사회적 가치 창출에도 힘 썼다. 1973년대부터 후원한 장학퀴즈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정부보다 먼저 한국고등교육재단을 설립해 세계 최고 대학 박사학위자 800여 명 배출하며 인재를 키웠다. ‘울산 시민 한 사람에게 1평의 녹지를 갖게 해주자’는 취지의 울산대공원 건립 등 지역사회와 동행에도 힘쓰고 있다. 이사회가 단순한 거수기가 되지 않도록 실질적인 책임과 권한을 부여하는 등 거버넌스 혁신에도 앞장서고 있다. 2004년부터 사외이사의 비중을 70%로 늘리고 이사회 중심의 거버넌스 스토리를 만들어갔다.
09
Deep Change를 위한 노사의 선택은 ‘상생’
혁신적 노사문화
최종현 선대회장은 “노사는 한솥밥을 먹는 한 식구”라고 1980년 전경련 강연에서 강연했다. 노사분규로 전국이 몸살을 앓던 1988년엔 노조의 필요성을 역설하기도 했다. 노동운동의 중심지였던 울산에서 SK그룹만은 노사분규 없이 생산활동을 지속할 수 있었다.
위기도 있었다. IMF 경제위기로 모든 기업이 휘청일 때 SK이노베이션도 구조조정을 피할 수 없었다. 강성 노조 집행부가 들어서며 소모적인 협상 관행을 되풀이했다. 하지만 2017년 양측은 노사관계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파격적인 협상안에 합의한다. 임국내기업 최초로 금인상률을 소비자물가지수(CPI) 와 연동하는 방식으로 정한 것이다. 기존 성과급 외에 성과지표(KPI) 에 따라 기본급의 최대 200%에 달하는 성과급도 지급하기로 합의한다. 구성원이 기본급 1%를 자발적으로 기부하고 회사가 동일한 금액을 더해 협력사 및 취약계층 등에 지원하는 ‘1%행복나눔기금’도 마련했다. 2020년 행복협의회를 출범, 노사간 문제를 상시 논의하며 모두의 행복을 추구하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을 연구하면서 한 기업의 역사와 혁신의 철학이 국가 경제발전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임이숙 | 한양대학교 ERICA 교수
노사 상생의 패러다임을 연 2017년 임단협 조인식
2022.1 협력사 상생기금 전달식
“파이낸셜 스토리는 즉흥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사회적 가치(SV) 라는 개념을 만들어오는 과정에서부터 ESG 경영에 대한 대응 버전으로 확장된 것입니다.”
김상준 | 이화여자대학교 교수
2022.10 60주년 창립기념식 ‘올 타임 넷제로’ 선언
2022.10 60주년 창립기념식 최태원 회장 축사
10
미래를 향한 근본적 혁신
파이낸셜 스토리
최태원 회장은 2020년 10월 열린 CEO세미나에서 ‘파이낸셜 스토리’라는 새로운 화두를 던졌다. 조직 매출, 영업이익 등 재무성과에 더해 시장이 매력적으로 느낄 수 있는 목표와 구체적 실행 계획이 담긴 ‘성장 스토리’를 만드는 전략이다. 기업이 추구하는 가치, 비전, 조직구조, 업무방식을 총체적으로 바꾸는 딥체인지(Deep Change) 로 게임의 룰을 바꾸는 게임 체인저가 되어야 했다.
김준 SK이노베이션 부회장(당시 총괄사장) 은 2021년 ‘스토리데이’에서 ‘카본 투 그린(Carbon to Green)’을 발표했다. 사업 중심축을 탄소에서 그린으로 전면 이동하겠다는 ‘탈 정유’ 파이낸셔 스토리 선언이었다. 친환경 비즈니스로 사업을 전환하는 ‘그린 트랜스포메이션’, 그린 포트폴리오를 강화하는 ‘그린 앵커링’, 2050년 이전 ‘넷 제로(Net Zero) 조기 달성’ 등의 핵심 전략이 뒤따라 나왔다.
창립 60주년 기념식에선 한 발 더 나아갔다. SK이노베이션은 60년간 사업을 영위하며 배출한 탄소를 2060년까지 모두 상쇄하겠다는 ‘올 타임 넷 제로’ 비전을 공개했다. 그린 에너지 기업으로 거듭나 탄소배출 없는 깨끗한 에너지를 후대에 물려주겠다는 다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