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revious076 CHAPTER 1. RESTART 선경을 만난 유공 종합에너지·석유화학기업으로 Jump Up 1980-1996 최종현 선대회장은 1982년 유공의 장기 비전을 제시하면서 구성원들에게 ‘석유화학도 종합에 너지와 직·간접적으로 연관되는 모든 것을 다룰 수 있어야 한다’라고 강력히 요구했다. 이는 다운 스트림으로 사업영역을 넓히는 등 수직계열화를 시작하라는 의미였지만, 유공의 석유화학 확장 은 법적으로 제한돼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 석유화학 환경에 반전의 기미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1980년대 중반 들어 석유화학산업 이 성장세를 회복하고 합성수지, 합성섬유, 합성고무가 호황을 보이기 시작하자 석유화학제품 생 산능력이 시장의 수요에 미치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결국 정부는 1986년 「석유화학육성법」 을 폐지하고 석유화학 분야의 투자를 자유화하는 조치를 단행했다. 그러자 자율화라는 해빙무드 를 타고 정유사 간 정유·화학시설 신·증설 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졌다. 이 무한경쟁의 판세 속에 유공은 이미 준비된 자였다. 10년 전 이미 ‘석유에서 섬유까지 수직계 열화’의 기치를 내걸었고, 1982년 ‘종합에너지·종합석유화학’을 목표로 설정했다. 무엇보다 유공 은 경쟁사들과 레벨이 달랐다. 최초 정유사, 최고 기업이란 타이틀에 걸맞게 석유화학산업 기초재 료인 나프타 생산시설을 갖춘 유일한 기업이었다. 이 같은 유리한 입장에서 유공은 석유화학 사업 확장에 먼저 나섰다. 1983년 3월 신규 아로마 틱 공장을 착공하면서 울산 석유화학 콤비나트 건설의 첫발을 내디뎠다. 아로마틱 공장은 착공 18 개월 만에 완공되어 1985년 12월 가동에 들어갔다. 이로써 생산 규모가 기존 40만 톤에서 70만 톤으로 늘어났고, 수입대체 효과와 함께 수출 가능성을 열었다. 아로마틱 공장 건설을 계기로 유공은 울산 석유화학 콤비나트 건설 조직을 더욱 강화했다. 1986년 본격적인 석유화학 사업 추진을 위해 ‘화학추진부’를 신설했다. 이후 화학추진부는 에틸 렌, 폴리올레핀(PE), 폴리프로필렌(PP), 프로필렌옥사이드(PO), 스티렌모노모(SM), 파라자일렌 (PX), 올소자일렌(OX) 등을 아우르는 울산 석유화학 콤비나트 건설에 박차를 가했다. 신규 에틸렌, 폴리올레핀(PE+PP) 건설과 일본 스미토모 합작의 (주)유공에라스토머 설립으로 합성수지 및 합성고무 사업에 진출했으며, 고부가 소재인 복합 PP의 제조·판매를 위해 1991년 미 국의 하이몬트와 합작으로 유공하이몬트(주)를 설립하고 진천에 컴파운딩 공장을 건설하기도 했 다. 특히 PX와 OX공장의 가동은 ‘원유에서 섬유까지’라는 비전을 달성하기 위해 추진해온 ‘정유- 석유화학-합성섬유’의 수직계열화를 이루는 계기가 됐다. 유공은 다운스트림 방식의 석유화학 콤비나트 건설을 통해 국제경쟁력을 갖춘 종합화학기업으 로 발전할 토대를 마련했고, 사업구조의 다각화와 시설확장에 따라 1989년 5월 울산 정유공장을 ‘울산Complex(이하 울산CLX)’로 개칭했다. 정유공장, 석유화학공장, 합성수지공장, PO/SM 공장 으로 조직을 분리·개편했다 울산 정유공장의 울산CLX 전환으로 유공의 수직계열화 완성은 초읽기에 들어갔다. 울산CLX 조성계획에 따라 1989년 11월 ①MTBE·②부텐-1 제조시설, 12월 ③제2납사 분해시설 및 ④제2부 타디엔 제조시설, 1990년 1월 ⑤제2CHx 제조시설, 5월 ⑥PX 제조시설, 10월 ⑦PE/PP 제조시설077 SK INNOVATION 60YEARS HISTORY BOOK 신규 아로마틱공장 준공식(1985.12.6) Memoir 60주년 추억담 울산CLX의 고난극복 DNA, 후배들에게 전수하겠습니다 김홍구 SK에너지 설비본부장 ● 유공 입사 후 30여 년간 울산CLX의 현장지킴이 역할을 무난히 해 왔다고 자 부합니다. 현장설비의 다양한 Trouble-shooting을 위해 밤새우던 일, 노사화합을 위해 현장 팀장으로서 구성원들과 동고동락한 일들이 머리를 스칩니다. 울산대공원 조성을 비롯한 자원봉사활동, 지역주민과의 밀착 소통으로 지역사 회 발전에 기여했다는 자부심도 있고요. 설비 협력사와 SHE First의 안전문화를 만들기 위해 손잡고 상생하는 행복 울 산CLX를 만들고 있다는 긍지를 느낍니다. 동력공장장, 계기전기실장을 거쳐 현재의 설비본부장 직책을 수행하면서 고난을 극복하는 울산CLX 특유의 DNA를 후배들에게 전수하는 데 힘쓰겠습니다. SK이노베이션의 넷제로 혁신의 심 장 역할을 하기 위해 데이터 기반의 설비관리 시스템(OCEAN-H)을 더욱 발전시켜야 합니다. 구성원의 세대교체를 대 비해 현장의 암묵지를 형식지로 전환하는 일도 시급합니다. AI/DT를 활용한 신기술 도입과 설비 진단·분석 역량을 강 화해 설비 경쟁력을 높일 생각입니다.078 CHAPTER 1. RESTART 선경을 만난 유공 종합에너지·석유화학기업으로 Jump Up 1980-1996 을 각각 완공했다. 이어 1991년 5월 ⑧제4상압증류시설과 6월 ⑨신규 휘발유 제조시설을 완공했다. 그리고 마침 내 1991년 6월 15일, 이들 9개 신규 플랜트들의 합동 준공식을 개최함으로써 울산CLX가 그 위용 을 드러냈다. 9개 신규 공장 건설에 투입된 공사비는 총 1조 5,000억 원, 건설기간은 짧게는 1년 11개월, 길게는 3년이 소요됐다. 9개 공장의 준공으로 유공은 1964년 국내 최초 하루 3만 5,000배럴의 정유시설을 가동한 것 을 시작으로 국내 에너지·화학산업의 새 장을 연 지 27년 만에 하루 58만 5,000배럴의 원유 정제 능력과 기존 15만 5,000톤을 포함, 연간 55만 5,000톤의 에틸렌 생산능력을 지닌 국제 규모의 정 유 및 석유화학 회사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또 유전개발에서 석유화학 다운스트림 부문에 이르 는 완전한 수직계열화를 이룬 대규모 정유공장을 거느린 국내 최초의 회사라는 타이틀도 얻었다. 수직계열화를 이룬 각 분야들은 이후 기술 노하우가 축적되고 서로 시너지를 일으키며 유공이 종합에너지·종합석유화학기업으로 자리매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특히 오늘날 SK이노베 이션이 국내 2위의 수출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데에는 이 시기 완성된 수직계열화가 무엇보 다 큰 힘이 됐다. 9개 공장의 합동 준공식으로 수직계열화의 완성을 대내외에 선포한 그날, 김항덕 유공 사장은 기념사에서 신규 공장 준공이 갖는 의미를 다음의 4가지로 압축 설명했다. “①‘원유에서 섬유까지’ 수직계열화의 완성을 들 수 있습니다. 이번에 파라자일렌 제조시설의 완 공으로 선경그룹은 마리브에서 자체 개발한 원유에서 시작하여 폴리에스터 섬유에 이르기까지 수직계열화를 완성하게 되었습니다.” “②그동안 유공의 화학사업은 기초 유분 위주의 제품을 생산하여 왔지만, 이번에 폴리에틸렌/폴 리프로필렌 제조시설을 완공하며 화학산업의 하류부문인 합성수지 사업에 본격적으로 진입하게 되었습니다.” “③제4정유 시설과 신규 휘발유 제조시설의 준공으로, 우리나라는 장차 국제적으로 수급 핍박 이 예상되는 석유제품 시장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공급능력을 확충하게 되었을 뿐 아니라 수출을 통한 외화 획득에도 크게 기여하게 될 것입니다.” “④유공은 환경문제에 있어서 단순히 ‘법을 어기지 않는 기업’의 차원을 넘어 ‘환경을 보전하는 기업’이 되기 위해 선도적인 노력을 경주하여 왔으며, 이번에 준공된 MTBE/부텐-1 제조시설로 당 사는 공해 배출 규제가 까다로운 선진국 기준에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고품질 휘발유를 생산·공 급하게 되었습니다.”079 SK INNOVATION 60YEARS HISTORY BOOK 011. 세계 최대 석유·화학공장 울산CLX 수직계열화 혁신 목표 달성 이후 유공은 다음 혁신활동으로 석유정제 고도화 시대에 대비했다. 고 도화설비는 값싼 중질유(벙커C유)를 값비싼 경질유(휘발유·경유)로 탈바꿈해서 원유의 부가가치 를 최대화하는 설비이다. 정제 과정에서 원유를 증류하면 휘발유·경유·중유 등이 나오는데, 여기 서 고도화시설을 또 한 번 거치면 휘발유와 경유를 더 뽑아낼 수 있다. 그런 까닭에 고도화시설을 지상유전(地上油田)이라고도 부른다. 특히 원유 매장량이 전무한 우리나라의 경우 고도화설비가 경쟁력을 한 단계 높여줄 수 있다. 1980년대까지 우리나라의 석유산업은 국내시장에 치중했다. 수출은 국내에 석유를 공급하고 남 은 잉여물량을 판매하는 수준에서 이루어지다 보니 자연히 물량이 적을 수밖에 없었다. 1990년 대 들어서야 원유의 부가가치를 높여 이를 수출로 연계하는 방식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품질이 낮은 중질유를 가격이 비싼 경질유로 정제해 수출함으로써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전략으로, 중질 유 분해시설이 그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유공은 1989년 1월 동일 공정으로는 세계 최대의 처리용량을 자랑하는 제1고도화시설(HOU) 건설에 들어갔다. 일본 지요다가 설계와 시공을 맡았고, 총 4,500억 원의 공사비를 투입해 1992 년 11월부터 가동을 시작했다. 고도화시설과 함께 1990년 1월 제3등·경유수첨탈황시설(No.3 MDU) 공사에 착수해 1992년 7월부터 가동에 들어갔다. 800억 원을 들여 완공된 이 공정은 상압 증류시설을 통해 산출된 고유황 등유와 경질가스유에서 각종 불순물을 제거해 초저유황의 등·경 유를 생산했다. 제1고도화시설과 제3등·경유수첨탈황시설의 합동 준공식은 1993년 11월 거행됐다. 하루 6만 배럴의 고유황 벙커C유를 원료로 초저유황 연료유 및 경질유 제품을 생산하는 중질유 탈황분해 Memoir 60주년 추억담 울산CLX의 축적된 경험과 기술로 변화를 주도하겠습니다 박창길 SK에너지 Engineering 본부장 ● 1964년 일산 3만 5,000배럴의 원유를 정제하는 정유회사로 출발 하여, 이제는 단일 공장으로 세계 굴지 규모의 에너지 화학 Complex로 성장했습니다. 1995년 입사한 엔지니어로서 가장 큰 즐거움은 제가 설계와 건립에 참여한 공장들이 모습을 갖추어 가고 그 첫 상업 가동이 시작되는 순간을 보는 일이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어려움에 직면하지만, 공정이 성공적으로 가동되어 On-Spec 제품이 생산되는 순 간, 힘들었던 기억은 보람과 자부심으로, 평생 간직할 추억으로 바뀌게 됩니다. 엔지니어들이 일상 관리업무보다 새로 운 프로젝트를 갈망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숱한 시행착오와 이를 통해 쌓은 기술력이 바탕이 되어 사고 빈도를 현 저히 줄임으로써 세계 최고 수준의 Safety와 Reliability를 확보했습니다. 60년간 축적된 울산CLX의 경험과 기술력은 SK이노베이션 Global Site와 그룹 내 동종 회사로 확대 전파되어 가고 있습니다. 성공적인 Green Energy 회사로의 전 환과 Carbon Net Zero 달성이라는 새로운 변화도 주도해 나갈 겁니다.080 CHAPTER 1. RESTART 선경을 만난 유공 종합에너지·석유화학기업으로 Jump Up 1980-1996 울산CLX 내 제5석유정제시설 전경(1996.9) 울산CLX 내 제1고도화시설 기공식(1990.6.15)081 SK INNOVATION 60YEARS HISTORY BOOK 시설과 하루 3만 5,000배럴의 고유황 등·경유를 생산하는 등·경유수첨탈황시설을 준공함으로써 유공은 단순 정제시대에서 벗어나 석유정제 고도화시대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이 시기 유공은 품질경영에서도 새 장을 열었다. 1993년 11월 25일, 영국의 로이드선급협회 (LRQA)으로부터 정유, 윤활유, 석유화학 등 국내 모든 제조 저장설비를 비롯한 관련 설계 서비스 에 대해 ‘ISO 9001’ 인증을 획득했다. 이로써 유공은 NACCB(영국), RVC(네덜란드), DAA(독일) 등 3개국 인증기관에 모두 등록한 세계 최초의 종합에너지·종합석유화학기업으로 이름을 올렸다. 유공의 석유정제 고도화 노력은 제1고도화설비에 머물지 않았다. 초저유황 등·경유 생산 확장 과 저공해 휘발유분의 안정적인 생산능력 확대를 위해 제4등·경유탈황시설(No.4 MDU), 제2고도 화시설 확충을 준비했다. 제2고도화시설 건설은 당시 유공 창사 이래 최대 투자규모와 최첨단 기술로 건설한 핵심 투자 사업으로, 정부의 유가 자유화 실시, 정제업 신규시장 진출 허용 등 심화되는 경쟁상황 속에서 선 도기업의 위상을 유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투자를 단행한 것이었다. 또한 석유수요의 고급화 및 경 질화에도 능동적으로 대처해 선행적인 설비경쟁력을 갖추고자 했다. 제4등·경유탈황시설(No.4 MDU)은 1993년 10월 착공, 1995년 9월부터 정상가동에 들어갔다. 이로써 총 11만 7,800배럴의 등·경유탈황시설을 보유하게 됐다. 1994년 10월 착공한 제2고도화 시설은 2년여의 공사 끝에 1997년 1월 상업가동에 들어갔다. 이로써 유공은 하루 6만 배럴의 고유황 벙커C유를 탈황분해해 휘발유 유분 4만 배럴, 저공해 경유 2만 배럴, 프로필렌(Propylene) 3,500배럴 등을 생산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울산CLX 내 에 제1고도화시설(HOU, Heavy Oil Upgrading)과 제2고도화시설(FCC)까지 2개의 고도화시설을 확보함에 따라, 휘발유 생산량이 5만 배럴에서 9만 배럴로 증가해 국내 최대 생산량을 유지할 수 있었다. 특히 1996년 9월 유공은 울산CLX 3만 3,000㎡ 부지에 제5석유정제시설(CDU, Crude Distillation Unit)을 완공하고 10월 본격 가동에 들어갔다. 하루 20만 배럴의 정제능력을 갖춘 이 시설의 가동으로 유공의 원유 정제능력은 일산 81만 배럴로 늘어나 세계 최대 정유공장으로 부상 했다. 082 CHAPTER 1. RESTART 선경을 만난 유공 종합에너지·석유화학기업으로 Jump Up 1980-1996 05 제품부터 마케팅까지 이노베이션 1990년대 들어 주유소 상표표시제, 주유소 거리제한 철폐, 유가 자유화 등 규제완화 봇물로 주유소와 정유업체가 무한경쟁에 휘말릴 때였다. 셀프 주유소, 브랜드 휘발유(엔크린)와 윤활유(ZIC), TV 광고 개시 등은 유공이 내놓은 발빠른 대응들이었다. 이는 업계의 마케팅 흐름을 선도했다. 1995년 문을 연 대덕마케팅개발원은 당시 대기업에선 드문 마케팅 전문 싱크탱크였다. 양질의 제품생산에 몰두하던 유공 입장에서 판매와 마케팅의 중요성을 깨닫고 관련 조직과 인력 확충에 힘쓰는 계기였다.083 SK INNOVATION 60YEARS HISTORY BOOK 1995년 기술 대외 의존도가 높은 윤활유 시장에서 순수 독자기술로 개발한 초고점도지수 기유인 ‘YUBASE’와 이를 원료로 한 윤활유 ‘지크(ZIC)’는 엔크린(휘발유 브랜드)과 더불어 SK주식회사 의 대표 제품이다. 윤활유 ZIC는 지난해 약 1,500억 원의 매출을 기록하며 시장점유율이 35% 이 상으로 윤활유 시장에서 1위를 달리고 있다. 이는 우수한 품질력과 더불어 유통구조 개선, 효과적 인 광고 전략이 주효했기 때문. 1995년 컴퓨터 그래픽을 이용해 최민수를 등장시켜 품질의 우수성 을 강조한 2편의 시리즈 광고를 제작, 소비자에게서 큰 관심을 얻었던 ZIC는 1997년 호주 현지 촬 영을 통해 잠자리를 주인공으로 엔진오일의 점도 유지력을 강조해 ‘소리가 좋은 엔진오일’로 소비 자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매일경제>, 1999.4.1) “ZIC의 소리를 들어보세요.” “비결은 점도 유지력!” “소리가 좋은 엔진오일 ZIC!” (유공 ZIC 광고, 1997) 지난 1995년 10월 국내 최대의 정유사인 유공은 옥탄가 이원화, 주유소 거리제한 완전 철폐를 앞 두고 대대적인 마케팅 활동에 나섰었다. 이를 위해 유공은 엔진과 환경을 보호하는 깨끗한 에너 지라는 의미의 엔크린을 선보였다. 엔크린은 현재 시장 점유율이 올 6월 기준 40.3%를 차지, 일 찌감치 1996년의 히트상품으로 지목됐다. 유공은 이 제품의 성공 요인으로 독자개발한 청정제를 사용한 우수한 품질을 먼저 손꼽고 있다. 그리고 광고전략과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엔크린 광고가 주효했다고 분석하고 있다. 엔크린 광고는 천리안 등 PC통신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 톱스타 박중훈과 이경영을 내세운 코믹 광고로 소비자의 관심을 끄는 데 성공했다. (<경향신문>, 1996.12.27) - SK주유소로 들어서는 박중훈의 자동차 “엔크린 가득! 요즘 엔크린 잘 나간다면서요?”(박중훈) - 주유소로 들어서는 이경영의 낡은 자동차 “엔크린 가득이요!”(이경영) “이 차에도 엔크린 써요?”(박중훈) “그럼요, 헌 차니까.”(이경영) “문제는 찌꺼기, 휘발유는 유공 엔크린!”(나래이터) - 주유소를 한바퀴 쌩쌩 돌며 나가는 이경영을 낡은 자동차를 바라보며 “야! 잘 나가네~”(박중훈) (유공 엔크린 광고, 1996) 084 CHAPTER 1. RESTART 선경을 만난 유공 종합에너지·석유화학기업으로 Jump Up 1980-1996 012. 셀프주유소 시대를 연 마케팅 혁신 유공은 1월 13일 중부고속도로 만남의 광장 휴게소에 위치한 동서울 주유소에 국내 최초로 셀프 서비스 주유소를 설치, 시범 운영에 들어갔다. 동서울 주유소는 당분간 주유판매원이 서비스를 제공하는 풀서비스와 셀프서비스를 섞은 혼합형 방식을 채택, 6대의 주유기로 유·무연 휘발유와 경유를 셀프서비스 방식으로 판매하게 된다. (사보 <선경>, 1992.2) 셀프주유소는 주유원이 주유하지 않고 탑승자가 차에 직접(Self) 기름을 넣는 주유소를 의미한 다. 미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 1990년대 영미권에서 유행하던 서비스가 홍콩, 싱가포르를 거쳐 2010년대부터 한국, 일본, 대만 등으로 점차 확산하기 시작했다. 오늘날 주유소 입장에서는 인건비 상승과 유통마진 축소로, 소비자 입장에서는 유가상승에 따 른 심적 부담으로 셀프주유소 선호도가 높아졌지만, 30년 전 유공이 혁신적으로 도입할 때만 해 도 고객 자신이 직접 주유한다는 데 대한 거부감이 있었다. 그러나 1997년 IMF 외환위기에 따른 국가경제 위기로 소비자 인식이 바뀌면서 셀프주유소가 점차 정착하기 시작했다. 이때 대부분의 정유사들도 셀프주유소를 본격적으로 도입하기 시작했 다. 결국 5년 앞선 유공의 주유소 혁신이 마침내 빛을 보게 된 것이었다. 유공이 셀프주유소를 도입할 시기는 정유업계에 무한경쟁 바람이 불던 때였다. 정유산업은 시 설만 잘 갖춰 놓고 좋은 제품만 잘 생산해내면 그만이라는 성공 공식이 있었다. 유공 역시 종합에 너지·석유화학과 수직계열화를 목표로 설비 신·증설에 집중해 왔다. 석유 판매를 전담하던 주유소 역시 수요가 많아 별다른 마케팅이 필요하지 않았다. 한마디로 주 Memoir 60주년 추억담 폴사인 지키려 맨몸으로 포크레인을 막아내던 독한 응집력 임민철 SK이노베이션 기업문화부문장 ● 60년이라는 가슴 벅찬 역사는 끊임없는 혁신과 과감한 개척정신의 산물입니다. 바이오 비즈니스, OK캐쉬백, Nate Drive 등 IT 기반 비즈니스, 배터리사업 등 이루 다 열거하기 힘듭니다. 이런 혁신스토리는 SK이노베이션 60년을 더욱 흥미진진하게 하였습니다. 또한, 일단 경쟁에 임하면 나오는 응집력과 독함은 강한 기초체질의 본질이었습니다. 주유소 폴사인 경쟁이 심했던 1990년대, 경쟁사가 당시 유공 폴사인을 점 거하기 위하여 포크레인을 앞세워 막무가내로 들어왔지만 우리 구성원들이 주유소 바닥에 큰 대 자로 드러누워서 저 지했던 장면이 생생합니다. 역사가 긴 회사에는 그만큼 유서 깊은 기업문화가 있습니다. SK이노베이션 구성원의 우수 함과 응집력은 경쟁과 혁신의 역사를 거치면서 단단해지고 또한 유연해지면서 잘 다져진 기업문화를 만들어 냈습니 다. 미증유의 위기가 닥치더라도 응전하고 극복할 수 있는 SK이노베이션 특유의 핵심역량이 될 것입니다.085 SK INNOVATION 60YEARS HISTORY BOOK 유소가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불리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다 1990년대 들어 상황이 변하기 시작 했다. 주유소 상표표시제 시행(1992), 주유소 거리제한 철폐(1993), 유가 자유화 조치(1997) 등으 로 정유업계와 주유소가 무한경쟁 시대로 내몰렸다. 이에 유공은 울산CLX 혁신에 이어, 주유소 마 케팅 혁신과 엔크린·ZIC의 제품 혁신에 본격적으로 돌입했다. 1992년 7월 1일, 주유소 상표표시제 시행은 정유업계 무한경쟁의 신호탄이었다. 각 정유사들은 시장점유율을 높이기 위한 주유소 확보 경쟁에 돌입했다. 정유회사를 표시하는 주유소 간판인 폴 사인(Pole-sign)을 확보하기 위한 정유사들 간의 경쟁을 두고 언론은 ‘폴사인 전쟁’이라고 부르기 도 했다. 유공은 석유제품의 품질관리와 함께 자사 상표를 표시한 주유소를 대상으로 환경 개선에 착수하고 서비스 수준을 제고해 나갔다. 소비자 지향 마케팅 강화의 일환으로 소비자 모니터 제도 도 도입해 운영했다. 또 서비스 순회시범팀(ATOM)을 조직해 활동했으며, 전국 베스트 주유소 선 발대회도 개최했다. 폴사인 경쟁에 이어 1993년 주유소 거리제한 철폐로 정유사 간 경쟁은 점입가경으로 치달았다. 1994년 7월 유공과 오랜 기간 거래해 오던 대형 유통대리점인 미륭상사가 후발 경쟁사와 계약을 체결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경쟁사가 미륭상사와 거래하고 있던 주유소들의 폴사인을 교체하려 하자 유공은 물리적 저지에 나섰다. 서울과 수도권 지역에서는 양사 직원들 간에 몸싸움까지 일어 났다. 유공은 오랜 법정투쟁 끝에 미륭상사와의 거래를 회복했다. 이를 계기로 유공은 그동안 한 번도 하지 않았던 TV광고를 실시하는 등 공격경영에 나섰다. 전 사원 주유소 1일 근무 실시, 제휴카드제 도입, 고객 모니터제 실시, 주유소 POS 시스템 지원, 주유 시설 현대화 추진, 셀프주유소 운영 확대 등 다양한 고객만족 프로그램을 시행하면서 고객과 함께 하는 유공의 이미지를 심었다. 1994년 7월에는 국내 최초로 주유소 품질점검용 이동차량을 개발 시기주체내용 1992 정부주유소 상표표시제 시행 유공주유소 환경개선, 소비자 모니터제도 도입, 순회시범팀(ATOM) 운영, 전국 베스트 주유소 선발대회 개최 1992.1.13 유공국내 최초 셀프주유소 도입(중부고속도로 만남의 광장 동서울주유소) 1993 정부주유소 거리제한 철폐 1994 유공미륭상사 폴사인 분쟁, 법정투쟁으로 해결 TV광고 실시, 제휴카드제 도입, 주유소 POS시스템 지원, 주유시설 현대화 추진 국내 최초 주유소 품질점검용 이동차량 개발 주유소 신규허가 부지 45% 유치 1995.11 유공대덕기술원에 대덕마케팅개발원 개원, 마케팅 강화 정부유가 자유화 조치 단행 1997.10 유공전국 석유대리점 통합, SK에너지판매회사 출범 정부 정유산업 경쟁도입과 유공의 대응전략Nex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