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revious066 CHAPTER 1. RESTART 선경을 만난 유공 종합에너지·석유화학기업으로 Jump Up 1980-1996 “유공을 정유회사로만 운영할 것이 아니라 종합에너지회사로 그 방향을 바꿔야 한다. 10년 후 에는 회사의 전체 사업 중 정유사업의 비율이 다른 에너지사업의 비율에 비해 낮아질 수 있게 해 야 한다.” 1982년 12월 9일, 유공의 부·과장급 간담회에서 유공의 새로운 진로를 설명하면서 했던 발언이 었다. 발언의 배경에는 1973년 시작된 중동발 석유가격 급등 사태인 1차 오일쇼크가 있었다. “세계 각국은 1970년대 오일쇼크로 인해 대체 에너지를 개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우리도 장기적으로는 가스, 전기, 태양에너지, 원자력, 에너지축적 배터리 시스템 등 종합 에너지와 관련 된 모든 사업을 해야 한다.” 최종현 선대회장의 발언 이후 3년 만에 유공은 종합에너지 개발 계획에 착수했다. 1985년 정유 업계 최초로 기술연구소를 설립한 것이었다. 특히 울산연구소는 출범과 동시에 최종현 회장이 지 시한 ‘에너지축적 배터리 시스템’ 개발에 R&D 역량을 집중했다. 1986년 신형 축전지 개발을 위해 연구원을 미국 주립대학 UNM(University of New Mexico)에 파견하고 첨단 축전지 개발동향 조 사 및 리튬이온 계열의 아연·브롬(Zn/Br 2 )전지 위탁연구를 진행했다. 이와 함께 니켈·카드늄(Ni/ Cd)과 연료전지(Fuel Cell) 등의 사업 타당성 조사, 선진기술 동향 및 보유사 조사 등도 병행했다. 1987년에도 울산연구소는 신형 축전지 위탁연구를 계속했으며, 첨단 배터리 개발동향조사는 물론 사업 착수 기회 포착 노력을 지속했다. 니켈·카드늄과 연료전지의 경우 사업개발 타당성조사 와 함께 기술제휴선도 탐색했다. 이 같은 치밀한 R&D 전략과 끈질긴 노력으로 배터리 R&D 역량 을 축적한 유공은 마침내 1991년부터 전기차 배터리 개발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당시 세계적으로 배터리 기술을 보유한 기업은 캐나다의 HBS, 독일의 HBB, 영국의 클로라이 드, 일본의 NDK 등 4개사에 불과했다. 세계적으로 개발된 전기자동차 역시 1회 충전거리 200km 정도이며, 배터리로는 무게가 무거운 납축전지가 대부분이었다. 국내에서는 현대자동차가 1991년 10월 소나타에 배터리를 장착, 최고 70km/h, 1회 충전거리 60km 정도인 전기자동차를 선보인 바 있었다. 특히 완전 무공해 자동차의 일정 비율 판매를 의무화한 ‘신대기보존법’이 1998년 미국의 캘리포니아주에서 발효가 예고됨에 따라 선진국의 경우 미국, 일본, 독일 등이 휘발유와 등유를 사용하는 내연기관자동차를 대신해 전기자동차를 적극 실용화한다는 방침을 세워놓고 고성능 전 지의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유공이 처음 개발한 전기차는 태양전지를 이용한 3륜차였다. 1991년 12월 유공은 울산 석유연 구실에서 태양전지를 이용한 3륜 전기자동차 제작에 성공, 성능시험을 실시했다. 당시 시험 제작 된 3륜 전기자동차는 최고 20km/h, 1회 충전 주행거리 40km 정도였다. 유공은 3륜차 배터리 개발 경험을 바탕으로 4륜차 전기자동차 배터리 개발을 계획했다. 연구개 발에는 10억 원, 배터리 개발에는 5억여 원의 자금을 투자할 계획이었으며, 1993년 말까지 개발 을 완료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특히 무게가 가볍고 에너지 집적도가 큰 배터리 개발을 위해 니켈· 카드뮴, 니켈·수소, 나트륨·유황 전지 중에서 하나를 선정, 개발에 나서기로 했다. 067 SK INNOVATION 60YEARS HISTORY BOOK 선진국의 전기차 배터리 개발과 신대기보존법 발효에 대비해 정부도 고성능 전지개발에 적극 나섰다. 과학기술처는 1992년 21세기 선도 기술개발사업으로 범국가적 차원에서 추진하고 있던 G7 과제(기술 선진 7개국 진입 프로젝트)에 전기차 배터리 개발과제를 포함시켰다. G7 과제의 고 성능 전지개발부문은 단기적으로 개량형 연축전지의 기술을 개발하고, 중기 목표로 니켈·아연, 니 켈·수소, 나트륨·황산 전지를 개발하며, 장기 목표로 리튬2차 전지를 개발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를 계기로 과학기술처는 니켈·아연, 니켈·수소, 리튬2차, 나트륨·유황, 개량형 납축전지 등 5 개 부문의 고성능 전지개발 주관기관을 선정했다. 당시 유공은 나트륨·유황 전지개발 주관기관으 로 선정됐다. 유공 울산연구소 외에도 기아자동차, 자동차부품 종합연구소, 기체연구소, 연세대학교 등의 기 관이 참여했으며, 이들 기관은 1998년까지 정부의 지원을 받아 전기자동차용 첨단 축전지인 나트 륨·유황 전지를 개발할 계획이었다. 나트륨·유황 전지 외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삼성전자와 현대자 동차 등이 니켈·수소 전지를, 세방전지 등이 니켈·아연 전지를, 서통과 한국전기연구소 그리고 테 크라프와 한국표준연구원 등이 리튬2차 전지 개발과제를 수행했다. 나트륨·유황 전지 개발과제를 맡은 울산연구소 신에너지연구팀에서는 1단계 연구기간인 1995 년까지 정부로부터 약 10억 원의 연구비를 받아 연구를 수행했다. 특히 주관기관 선정 1년 만에 유 공은 주목할 만한 결과를 이끌어 냈다. 1993년 5인승 자동차에 모터와 나트륨·유황 배터리를 달 아 시험 주행에 성공했다. 유공은 당시 국내 전기차 성능 신기록을 세웠다. 유공 개발 전기차의 최 고 속도는 130km/h, 1회 충전 시 주행 가능 거리는 120km를 기록했다. 1993년 국내 연구기관과 기업이 개발한 전기차의 최고 속도는 100km/h, 1회 충전 시 주행가능 거리는 100km에도 미치지 못했다. 40년 앞을 내다보고 추진했던 SK의 전기차 배터리 개발의 될성부른 떡잎의 위력이 돋보 이는 순간이었다. 008. 대덕단지에 R&D Complex 유공이 ‘2000년대 세계 일류 종합에너지·종합석유화학기업 전환’을 장기 목표로 설정하고 R&D 기반을 강화할 때, 선경그룹은 그룹 종합연구단지 구축이란 원대한 계획을 수립하고 있었다. 2010년까지 3,000여 명의 연구인력을 갖춘 종합연구체계를 구축한다는 R&D 비전을 세우고 그 룹 종합연구단지 건설을 계획했다. 유공의 울산연구소, 인천고분자연구소, 미주동부 R&D센터, 선 경인터스트리 연구소, SKC중앙연구소, 선경건설연구소 등 계열사 연구소별로 이루어지고 있던 R&D 활동을 종합적인 체계 안에서 통합한다는 계획으로, 이를 통해 2000년대 선경그룹이 세계 일류기업으로 발돋움하는 중요한 전략적 기반을 갖춘다는 야심찬 R&D 비전이었다. 그룹 종합연구단지 구축의 사명은 유공이 맡았다. R&D 조직 내에 기술개발부, 신기술사업개발068 CHAPTER 1. RESTART 선경을 만난 유공 종합에너지·석유화학기업으로 Jump Up 1980-1996 부 외에 별도로 종합연구소 설립준비팀을 두었다. 설립준비팀은 그룹 종합연구단지가 들어설 최 적의 장소로 대전시 유성구에 위치한 대덕연구단지를 주목했다. 대덕연구단지는 과학입국이라는 비전 아래 1973년 1월 대통령의 지시로 건설기본계획이 확정된 대한민국 R&D의 메카였다. 정부 투자·출연연구기관뿐 아니라 민간 연구기관과 KAIST 등이 자리하고 있는 과학기술 개발의 요람 으로, 모든 연구자원이 집중되어 있고 기술정보의 교환과 전문인력 확보 등이 용이해, 그룹의 종 합연구단지가 들어설 경우 연구효율의 증대를 위한 시너지 효과가 클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종합연구소 설립준비팀은 그룹 중장기 개발계획에 따라 대덕연구단지 내에 57만 7,500㎡ 규모 의 연구부지를 확보했다. 그리고 건설사업 마스터플랜에 따라 1995년까지 유공 대덕종합연구소 를 위시해 500여 명의 연구원을 수용할 수 있는 연구동 및 각종 지원시설 건립을 진행했다. 건설사업 진행 과정에서는 세계적인 연구소 건설 자문기관인 EWA(Earl Walls Associate)의 자 문을 받았으며, 1992년 유공의 대덕종합연구소를 선도로 그룹 대덕연구단지 건설이 착공에 들어 갔다. 그룹 대덕연구단지는 연구동 3개동, 실증실험동 4개동 등 총 14개동을 완공하고 1995년 5 월 25일 준공식을 가졌다. 유공 대덕종합연구소는 준공과 함께 명칭을 대덕기술원으로 변경했다. 유공은 대덕기술원 출범에 맞춰 기술개발 관련 투자와 인력을 대폭 늘리고, 종합적인 연구체계 구축 등을 골자로 하는 중장기 기술개발전략을 수립했다. 대덕기술원이 출범하면서 울산연구소와 대덕기술원으로 이원화되어 있던 연구기능을 대덕기 술원으로 집중했다. 대덕기술원은 석유류 제품 품질혁신과 첨단 윤활유 개발, 환경에 무해한 석유 화학 제품개발 등 ‘기존 사업’ 영역은 물론 태양전지·전기자동차용 배터리·연료전지 등 ‘신에너지’ 분야의 연구개발을 진행했다. 또 ‘첨단 고분자’ 분야, ‘정밀화학’ 분야, ‘환경기술’ 분야, ‘생물공학’ 관련 분야 등 신규사업 창출과 관련된 연구를 통해 유공 성장의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면서 유공 신기술의 산실로 자리 잡았다. 009. R&D센터 첫 미국 상륙, 신약 개발의 발판으로 “지난 8년간 뉴저지연구소와 대덕기술원에서 신약개발에 들어간 비용은 2,900만 달러(약 385억 원)인데, 2건의 신약 후보물질 개발에 힘입어 추정 사업가치가 2억 달러(약 2,654억 원)에 이를 것 으로 미국 전문컨설팅회사가 분석한 바 있다. 특히 존슨앤존슨에서는 우리의 이 같은 성과를 성공 사례로 보고 벤치마킹하고 있다.” 1999년 7월 14일, SK주식회사의 개발신약이 미국의 세계적 헬스케어 기업인 존슨앤존슨에 기 술수출됐다는 소식에 기자들이 몰려들었고, 우울증 치료제(YKP10A)와 간질 치료제(YKP509) 신 물질 신약 개발 관련 K-바이오 성과를 대내외에 보고했다. 울산연구소가 SK 전기차 배터리 개발의 초석을 다졌다면, 미주동부 R&D센터와 대덕기술원은 069 SK INNOVATION 60YEARS HISTORY BOOK SK 신약개발의 최초 발원지였다. SK 바이오의 출발은 최종현 선대회장의 미래 구상에서 출발했다. 1982년 유공 혁신 설계도를 제시하면서 유공 구성원들에게 ‘정유회사만이 아닌 종합에너지기업 으로 변신할 것’을 요구했고, 그룹 차원에서는 1980년대 주력사업인 섬유산업을 대체할 성장동력 을 고민하던 중 바이오사업에 주목했다. 최종현 선대회장은 섬유를 만들 때 화합물을 합성하는 방식이 약품 제조방식과 유사하고, 때마 침 해외 섬유기업도 생명과학으로 비즈니스 모델을 전환하는 흐름을 감안해 바이오사업에 남다 른 애착을 느꼈다. 서울대와 미국 위스콘신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했던 그의 이력도 유공의 바이오 사업 진출에 나름의 몫을 했다. 무엇보다 사업보국의 의지가 가장 크게 작용했다. 유공 인수 당시 시기 어린 주변의 시선과 관심이 선경그룹에 쏠렸고, 이에 최종현 선대회장은 대내외에 유공의 민 영화 성공과 사업보국을 자신 있게 천명했다. 미래 성장동력의 하나로 바이오를 선택하면서 그의 사명감이 ‘바이오 주권을 확보, 사업보국하겠다’는 각오로 구체화한 것이었다. 그러나 사업화 과정은 쉽지 않았다. 당시 제약업계는 다국적 기업의 신약을 수입해 단순 가공· 포장하거나 복제 판매하는 수준이었다. 국내 최고기업 유공이 제약 분야에 진출하자 경쟁업체들 은 ‘중소업종 침해’라며 강력히 반발했다. 최종현 선대회장은 신약개발에만 집중하며 이 같은 반발 을 무마했다. “대기업이 참여했으면 이익을 사회에 환원하고 국민에게 봉사해야 한다”라고 강조 하면서, “우리의 목표는 우리 상표가 붙은 세계적 신약을 만드는 것이니 걱정하지 말라”라고 세간 의 우려를 단호하게 일축했다. 당시만 해도 바이오 사업에 뛰어든다는 것은 크나큰 위험이었으나, 글로벌 신약기업을 따라잡기 위한 ‘P-프로젝트’를 출범시켰다. 제약(Pharmaceutical)의 영문 첫 이니셜을 딴 이 프로젝트는 오늘날 SK바이오팜의 출발점이 됐다. 1993년 대덕기술원에 대여섯 명 정도의 신약개발 특별 조직이 꾸려졌다. 국내에 대덕연구소가 있다면 미국에는 미주동부 R&D센터가 있었다. 한·미 공조체제를 마련함으로써 유공은 미국을 사 업개발 또는 임상개발 거점으로 삼아 글로벌 사업화에 일찍 촉각을 곤두세웠다. 미주동부 R&D센 터는 1993년 6월 중추신경계 신약개발 연구계획을 수립했다. 이후 간질치료제, 우울증치료제 등 중추신경계(CNS) 질환 약물 개발에 집중했다. 내부의 부족한 역량을 채우기 위해 유공은 미국법 인을 중심으로 한국과 연결 짓는 탄탄한 구조를 만들었다. 미국 제약사에서 신약개발을 경험한 한 국인 제약전문가들을 뉴저지 법인으로 불러들였다. 이들과 한국 연구진들과 공동 작업을 할 기반 을 다졌다. 뉴저지 미국법인은 1989년 10월 설립된 유크로닉스(YOKRONICS.Inc)였다. 선경그룹 은 바이오와 함께 정보통신사업도 미래 성장동력으로 선택했고, 당시 정보통신사업 진출 교두보 역할을 수행했던 유크로닉스는 바이오 사업 전문인력 확보의 숨은 공로자였다. 1997년 1월 유공은 SK주식회사로 사명을 변경하고 SK그룹의 대표기업이 되면서 미주동부 R&D센터를 의약개발센터와 뉴저지연구소로 분리했다. 신약 치료제의 국내외 특허출원과 미국 내 임상실험, 생산과 판매 등을 의약개발센터에 맡기는 한편, 뉴저지연구소에는 의약중간체나 의 약제품 원료의 중간물질과 같은 거시적인 프로젝트들을 중점적으로 담당하도록 했다.070 CHAPTER 1. RESTART 선경을 만난 유공 종합에너지·석유화학기업으로 Jump Up 1980-1996 신약개발의 성과는 ‘P-프로젝트’를 시작한 지 3년 만에 나타났다. 1996년 우울증 치료제 ‘YKP10A’ 개발에 성공했다. “유공은 1993년부터 4년간 32명의 연구인력과 200억 원의 개발비를 들여 기존 우울증치료제의 부작용을 획기적으로 개선한 ‘YKP10A’를 개발했다. 최근 미국 식품의약국(FDA)에서 새 치료제 의 미국 내 임상실험 허가를 얻어 곧 실험에 착수한다. 국내 기업이 미국에서 임상실험 허가를 획 득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미주동부 R&D센터와 대덕기술원이 공동개발한 YKP10A는 개, 쥐 등 동물을 대상으로 한 임상실험 결과, 기존 치료제가 갖는 부작용이 크게 줄었고, 약효 발현시간 또 한 크게 단축된 것으로 확인됐다.” (<매일경제>, 1997.1.28) 우울증 치료제에 이어 SK주식회사의 신약개발은 이후 더욱 속도를 냈다. YKP10A 개발 2년 만 인 1998년 간질 치료제 ‘YKP509’ 개발에도 성공했다. 한국 최초로 미 FDA에서 미국인 대상의 임 상실험 승인을 얻어냈으며, 1999년 7월 세계적 제약기업 존슨앤존슨에 기술수출해 9억 달러 이 상의 수익도 확보했다. “SK주식회사가 총 100억 원을 투자해 미국 국립보건원(NIH)과 공동으로 차세대 간질 치료제 ‘YKP509’를 개발했다. SK 관계자는 ‘1993년부터 5년간 미주 의약개발센터, 대덕기술원, 미국 국 립보건원 등과 공동으로 연구해 300여 신물질을 합성하는 과정 끝에 차세대 간질 치료제를 개발 하는 데 성공했다’며, ‘이달부터 미국 내 임상시험을 할 계획이며, 치료 효과가 기존 제품의 30배 이상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이번에 개발한 ‘YKP509’는 기존 치료제와는 다른 약리작 용을 하도록 설계함으로써 연속 발작으로 심한 뇌손상을 일으키는 급성 간질환자부터 난치성 환 자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치료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회사측은 덧붙였다.” (<매일경제>, 1998.10.27) SK주식회사의 바이오사업 성공 비결은 ‘꾸준함’에 있었다. CNS 분야는 약효 평가가 굉장히 어 렵고 개발 리스크가 큰 탓에 초기 한국 신약개발자들 사이에서도 잘 접근하지 않는 영역이었지만, 오랜 시간 어떤 시련에도 굴하지 않고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묵묵히 걸어왔다. 최태원 회장의 발 언처럼 ‘꾸준함보다 더 믿을 것은 없다’는 신념으로 미래 먹거리를 일궈낸 ‘바이오 뚝심’의 승리였 다. 바이오사업은 투자를 많이 하고 연구를 열심히 한다고 해서 결과가 보장되는 건 아니다. R&D 를 수익으로 연결하는 비즈니스 모델로 만들려면 적절한 아웃소싱, 정보수집, 분석능력과 인재 활 용 등이 뒷받침돼야 한다. 미국에 연구소와 현지법인을 둔 것도 성공 요인이었다. 뉴저지연구소는 첨단 정보수집에 뒤처지지 않았고, 최고의 의약 전문가들을 시의적절하게 조달했다.071 SK INNOVATION 60YEARS HISTORY BOOK 시기내용 1983.11 유공 기술지원연구소 설립 1985.11.11 기술지원연구소 준공(울산연구소) 1988 울산연구소 신에너지 연구 시작 1989.7인천 고분자연구소 설립 1989.11 미주동부 R&D센터 설립 1991 미주동부 R&D센터 뉴저지주 이전(뉴저지연구소) 울산연구소 전기차 배터리 개발 본격화 태양전지 3륜차 성능시험 성공 1992 정부 전기차 배터리 ‘G7 과학기술과제’로 추진 유공 나트륨·유황 배터리 개발과제 주관기관으로 선정 1993 유공 나트륨·유황 배터리 시험 주행 성공 대덕기술원 신약 개발 조직 구성. ‘P-프로젝트’ 태동 1993.6 미주동부 R&D센터 신약개발 연구계획 수립. 중추신경계(CNS) 집중 1995.5.25 유공 대덕기술원 준공 1996 우울증 치료제 ‘YKP10A’ 개발 1997.1 미주동부 R&D센터, 의약개발센트와 뉴저지연구소로 분리 1998간질 치료제 ‘YKP509’ 개발. 한국 최초 미 FDA 임상실험 승인 1999 개발신약 미국 존슨앤존슨에 기술수출 유공 R&D 연혁 유공 대덕기술원 준공식(1995.5.25)072 CHAPTER 1. RESTART 선경을 만난 유공 종합에너지·석유화학기업으로 Jump Up 1980-1996 04 혁신 첫 걸작품, 수직계열화 완성 유공은 1991년 울산CLX 9개 공장의 합동 준공식을 계기로 ‘수직계열화 완성’을 안팎에 선포했다. 최 종현 선대회장이 1975년 내 건 ‘석유에서 섬유까지’의 꿈이 현실화했다. 유전개발에서 다운스트림에 이르기까지 석유화학사업의 전 분야 제품을 일관 생산하는 국내 에너지·화학종합기업이 탄생하는 순 간이었다. SK이노베이션이 오늘날 한국 두 번째 수출기업으로 우뚝 선 것도 수직계열화 덕분에 가능 했다. 073 SK INNOVATION 60YEARS HISTORY BOOK “①폴리에스터 원사생산 회사 도약 ②수직계열화 완성 ③정보통신사업 진출. 선경의 3번의 도약 은 모두 SUPEX추구의 산물이었다.” (최종현 선대회장, 한국이동통신 인수 직후 발언, 1994) SUPEX는 Super Excellent의 앞 부분에서 차용한 말로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최상의 수준’을 의미한다. 보통사람들이 기업경영의 목표를 최고 수준(EXCELLENT)으로 잡는데, 그들을 앞서 기 위해서는 EXCELLENT보다 한단계 더 높은 SUPER EXCELLENT 수준으로 목표를 잡아야 한 다는 의미다. 오늘의 글로벌 SK를 만든 것이 바로 이 SUPEX추구법이다. 최종현 선대회장은 바로 그 SUPEX추구를 얘기한 것이다. 1991년 6월 15일, 9개 신규공장의 합동 준공식을 계기로 유공은 수직계열화 완성의 위업을 달성했다. SUPEX는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최상의 수준’을 의미한다. 1982년 최종현 선대회장이 그렸던 유공 혁신 설계도인 장기경영계획에 따라 유공의 구성원들은 SUPEX추구를 통해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최상의 능력을 발휘했고, 그 결과 ‘수직계열화 완성’이 라는 혁신의 첫 걸작품을 완성해낸 것이었다. 수직계열화 완성의 이 경사스러운 날에 대내외 귀빈이 울산 정유공장을 방문해 축하와 격려를 아끼지 않았으며, 축하사절을 맞는 김항덕 유공 사장도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1991년 6월호 선경 그룹 사보는 ‘석유에서 섬유까지 수직계열화 완성, 그 의미와 전망’이란 특집호를 냈고, 그 지면에 는 <선경그룹 40년사>를 집필한 전범성 작가와 <SK그룹의 SUPEX>의 저자 서울대 조동성 교수 등의 축하메시지가 실렸다. “우리 유공은 지난 30년 동안 국내 석유 및 화학산업의 선도기업으로서 국민경제의 발전과 함께 성장을 거듭해 왔으며, 1980년대부터는 ‘2000년대 세계 일류 수준의 종합에너지·종합화학기업’ 을 목표로 제2도약을 위한 의욕적인 투자를 시작하였습니다. 1987년 제2에틸렌 제조시설의 건 설을 시발로 4년간 총 1조 5,000억 원 정도의 시설투자를 하여 오늘 감격적인 합동 준공식을 갖 게 된 아홉 개 신규공장은 세계 일류기업으로 도약하는 유공의 새로운 이정표가 될 것입니다.” (김항덕 사장 기념사) “유공은 국내 최초의 정유회사로 설립되어 지난 30년간 석유화학산업의 개척자라는 사명감으로 지속적인 설비 증강과 기술축적을 이룩하여 우리나라의 산업발전을 이끌어 오는 역할을 훌륭하 게 수행하여 왔다고 본인은 믿습니다. 특히 이번에 막대한 투자자금과 고도의 기술 수준이 요구 되는 정유와 석유화학 아홉 개 신규공장을 성공적으로 완공함으로써 정제능력과 에틸렌 생산능 력 면에서 유공이 세계 수준의 석유화학회사로 발돋움하게 된 것을 국가경제 정책을 운용하는 한 사람으로서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바입니다.” (진념 동력자원부 장관 축사)074 CHAPTER 1. RESTART 선경을 만난 유공 종합에너지·석유화학기업으로 Jump Up 1980-1996 울산 정유공장 시설을 둘러보고 있는 최종현 선대회장(1991.6.15) 신규공장 합동 준공식(1991.6.15)075 SK INNOVATION 60YEARS HISTORY BOOK “유공의 신규공장 합동 준공식은 선경의 원대한 목표였던 석유화학산업 수직계열화의 완성을 의 미하는 것으로써, 이는 일찍이 세계 어느 나라 기업사에서도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일대 장거 라 하겠다.” (전범성 작가 축하메시지) “유공은 지난 6월 울산에 석유화학 공장들을 준공함으로써 그룹의 수직계열화를 마무리 짓고, ‘석 유에서 섬유까지’ 모든 원자재와 제품을 관계회사 내에서 일관 생산하는 체제를 갖추었다. 원유 개발부터 석유화학 제품 생산까지 일관생산체제를 갖추는 것은 우리나라에서는 유례가 없는 일 일뿐더러 전 세계적으로도 극히 드문 일이다.” (조동성 교수 축하메시지) 010. 수직계열화의 서막, 석유화학 콤비나트 1975년 새해 첫날, 최종현 선대회장의 신년 메시지가 전달되었다. 1차 오일쇼크의 암울했던 긴 터 널을 지나 이제 겨우 성장의 발판을 마련하던 시점이었다. 그의 첫 일성은 ‘석유로부터 섬유에 이르는 산업의 완전계열화를 확립하는 것’이었다. 당시 그룹 의 구성원들은 ‘수직계열화’ 개념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직물회사에서 폴리에스터 원사회사로 도 약했듯이, 선경의 두 번째 혁신으로 ‘다음의 목표는 석유사업이겠구나’ 하는 이해 수준에 머물렀 다. 정유와 석유화학이 어떻게 콤비나트를 이뤄 섬유산업으로까지 다운스트림으로 수직계열화되 는지는 아득히 먼 신기루처럼 좀체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 혁신의 실체가 드러난 것은 1982년 유 공의 장기경영계획이었다. 최종현 선대회장은 ‘종합에너지·종합석유화학기업’을 장기 비전으로 제시했다. 석유화학 전문가가 많았던 유공의 전사들은 그 혁신 설계도의 내용을 제대로 이해했다. ‘종합에 너지·종합석유화학’의 첫 번째 열쇠가 수직계열화임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들은 장기 비전의 중장 기 전략으로, 석유화학 콤비나트를 시발로 하는 정유·석유화학의 수직계열화를 설정하고 SUPEX 추구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그러나 아직 수직계열화의 여건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였다. 우리나라 석유화학산업은 1970년 대 말 오일쇼크 사태로 내수 기반이 악화되면서 1980년대 오랜 침체기를 맞고 있었다. 더구나 1970년 1월 제정된 「석유화학육성법」이 발목을 잡았다. 정부가 「석유화학육성법」을 통해 ‘1개사 1 품목’ 정책을 전개하자, 그 영향으로 정유업계의 설비투자가 부진했다. 그러다 보니 유공의 석유 화학사업 영역은 올레핀(Olefin)과 아로마틱(Aromatic) 등 기초 유분(溜分) 공급에만 머물렀다. Nex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