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revious046 CHAPTER 1. RESTART 선경을 만난 유공 종합에너지·석유화학기업으로 Jump Up 1980-1996 당시 선경그룹은 모회사인 선경직물에 이어, 선경화섬, 선경합섬, 선경유화를 설립하고 워커힐호 텔을 인수해 막 기업그룹의 틀을 갖춰 나가던 때였다. 그러나 경영은 주먹구구식이었고, 기업의 중요한 의사결정을 총수의 개인적인 판단에 의존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그는 기업이 커지고 사회구조가 복잡해지면 경영자의 개인적인 자질만으로는 기업이나 사회를 이끌어갈 수 없다고 생각했다. 먼저 최종현 선대회장은 ①사람을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 ②기업을 합리적으로 운 영할 수 있는 시스템 ③철저한 현실인식을 바탕으로 한 시스템 등 3가지 경영원칙부터 세웠다. 그 리고 이 같은 경영원칙을 경영시스템으로 체계화하도록 경영기획실에 주문했다. 경영기획실이 선 경그룹의 경영시스템 초안을 짜는 데는 장장 4년의 시간이 걸렸다. 1979년 3월, 최종현 선대회장 은 마지막으로 전 계열사 임직원들과 함께 3박 4일간 난상토론을 펼친 끝에 최종안을 확정했다. SKMS에서는 기업이념을 ‘이윤 극대화를 통한 영구 존속과 발전’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러한 기본이념을 바탕으로 SKMS는 경영의 ‘정적요소’와 ‘동적요소’를 구분했다. 정적요소란 인사·재무· 기획 등 일상적인 관리요소를, 동적요소란 인간과 관련된 의욕과 역량·의사교류·패기 등을 의미한 다. SKMS 완성과 함께 최종현 선대회장은 이후 그 사상을 전 구성원에게 전파하기 시작했다. “피라미드 형태의 조직을 보면 대개 하위직으로 갈수록 이윤 극대화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기 때 문에 자연히 강력한 집권화 현상이 나타난다. 위에서 다 결정하고 밑에서는 시키는 대로만 하게 하려면 몇몇 상위층 엘리트의 두뇌만이 필요한데,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면 조직에도 사람의 인체 조직과 같은 관리 분권화가 필요하다.” “사람은 석유와 비교도 되지 않는 무한한 자원이다. 경영은 결국 인간을 어떻게 활용해 가치를 극대화하는가에 달려 있다. 사람의 진짜 힘은 두뇌에 있는데, 이를 끄집어내는 것을 서양 경영은 소홀히 해왔다. 이는 동양식으로 해야 한다. 동양의 덕으로 끄집어내지 않으면 안 된다. 경영에서 는 눈에 보이지 않고 만질 수도 없는 요소가 굉장히 중요하다. 이는 모두 사람 속에 들어 있다. 이 를 잘 활용하자는 것이 SKMS이다.” 1981년 최종현 선대회장은 유공에 사장실을 설치하고 SKMS에 의한 경영체질 개선에 주력했다. 구분내용 제정시기1979년 3월 기업이념이윤 극대화를 통한 영구 존속과 발전 관리법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든 항상 최고의 결과를 끌어내는 공식 배경인재의 효율적 관리, 합리적 운영, 철저한 현실인식 바탕의 시스템 경영 지향 관리요소정적요소: 기획관리, 인력관리, 조직관리, 회계·재무관리, 마케팅관리, 생산관리, 연구개발관리, 구매관리, 안전관리, PR관리, 정보관리 등 동적요소: 의욕관리, 관리역량관리, 코디네이션관리, 커뮤니케이션관리, SK멤버십관리 등 SKMS 개요047 SK INNOVATION 60YEARS HISTORY BOOK 구분내용 도입시기1982년 7월 배경10년 장기계획, 세계 일류기업 도전 지향점종합에너지 및 종합석유화학회사 도전 분야석탄, 가스, 태양에너지, 원자력, 에너지축적 배터리 시스템 등 유공 장기경영계획 수립 과거 명성뿐이었던 부사장 등 임원들에게 책임과 권한을 부여하고, 실질적인 임원으로서 회사 전 체를 직접 경영하게 해서 회사의 불합리한 요소들을 바꾸도록 했다. SKMS 이식 초창기에는 사장 실이 비리나 조사하는 곳으로 오인받기도 해 대다수의 직원들이 접근을 꺼려하기도 했다. 그러나 사장실로 파견된 선경의 여러 유능한 구성원들이 유공 구성원들과 함께 유공의 모든 분 야를 SKMS에 입각해 분석하고 경영을 조언해주는 사이 오해가 풀리고 경영성과 면에서도 많은 향상을 가져올 수 있었다. 구성원의 능력을 극대화하는 SKMS 성공 유전자의 이식으로 유공의 혁신은 순항을 거듭해 나 갔다. 1980년 유공 인수 당시 그 자회사였던 흥국상사도 함께 인수해 석유류 제품의 판매체제를 확립했고, 1982년 1월, 유공해운을 설립함으로써 원유 수송체제의 안전망도 갖추었다. 1982년 7월, 상호도 대한석유공사에서 ‘주식회사 유공(油公)’으로 변경했다. 사명변경은 유공 인수 때부터 거론돼 왔으나, 갑작스런 변화에서 오는 여러가지 부작용을 고려해 잠시 미루었다. 그러다 고심 끝에 이미 일반에 잘 알려진 친근한 어감이었던 ‘유공’을 최종적으로 확정했다. 다만 그 이면에는 남다른 의미를 담았다. 유(油)는 에너지 중의 대표적인 석유를 의미하고, 공(公)은 국 가기간산업으로서 공익을 우선하는 기업을 상징한다는 의미를 부여했다. 상호 변경을 통한 회사 이미지 쇄신에 이어 대망의 혁신 설계도 작성에 돌입했다. 1982년 5월, 최종현 선대회장은 과거 GULF의 관리 스타일에서 벗어나 장기경영계획을 세워 회사를 운영하도 록 지시했다. 사실상 그때까지 유공에는 단기 수익에만 치중했던 GULF의 기업운영으로 회사 규 모만 컸지, 선경처럼 뿌리내린 경영방침이 없었다. 그래서 구성원들이 유공에 들어와서 무엇을 해 야 하고, 앞으로 어떻게 회사와 함께 성장할 것인가에 대한 확신 같은 것들이 없었다. 최종현 선대 회장은 유공의 부·과장급 간담회 석상에서 장기경영계획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유공은 그동안 회사답게 운영되지 못하고 합작선인 GULF를 중심으로 해서 GULF 수석부사장 개인의 취향에 맞게 운영돼 왔다. 회사란 나름의 장기적인 비전을 갖고 그 방향에 맞춰 운영돼야 하는데, 그동안 그 어떤 구체적인 비전도 없이 운영됐기 때문에 구성원 각자 나름대로의 의견은 있으면서도 회사 전체의 통합된 의견은 없었다. 장기경영계획을 세워 기업을 운영한다는 것은 비 록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기업을 영구히 존속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뒤따라야 할 사항 이다.”048 CHAPTER 1. RESTART 선경을 만난 유공 종합에너지·석유화학기업으로 Jump Up 1980-1996 3박 4일에 걸쳐 진행된 SKMS 세미나(1979.3) 서울 여의도에 자리잡은 유공 신사옥049 SK INNOVATION 60YEARS HISTORY BOOK 1983년 7월, 유공은 SKMS에 입각해 유공의 혁신 설계도인 장기경영계획을 확정했다. 미션의 최종 지향점은 ‘종합에너지 및 종합석유화학회사 전환’이었다. 종합에너지에는 정유뿐만 아니라 석탄, 가스, 태양에너지, 원자력, 에너지축적 배터리 시스템 등도 포함됐다. 유공은 이때 이미 배터 리사업에 대한 장기계획을 구상하고 있었다. 1982년 12월 과장급 이상 간부들을 상대로 발표한 종합에너지기업 비전을 구체화한 것이다. 석유화학사업도 종합에너지와 직·간접으로 관련되는 부문을 모두 포함하도록 사업영업을 확대 했다. 특히 원유 도입에만 의존하지 않고 직접 개발해 도입하는 방안도 세웠다. 무엇보다 ‘종합에 너지 및 종합석유화학’ 기반을 다지기 위해 R&D 역량을 더욱 강화하기로 했다. 003. 글로벌 초일류 위한 SUPEX추구 SKMS 도입부터 혁신 설계도 수립에 이르기까지 유공은 3년간 바쁜 일정을 달려왔다. 1980년 12 월, 347억 2,000만 원이라는 막중한 적자부채를 안고 민간기업으로 출범한 유공은 1981년 민영 화 1차년도에 인수 당시의 적자를 극복하고 175억 8,000만 원의 흑자를 실현한 이래, SKMS에 의 한 꾸준한 경영개선으로 1983년도에 1981년 대비 25% 신장한 197억 2,000만 원의 당기순이익 을 실현했다. 그 결과 최종현 선대회장은 3년 전 정부가 제시했던 7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했고, 유공 인수 당 시 기자들이 집요하게 추궁했던 ‘특혜 논란’도 잠재웠다. 7가지 조건을 이행하지 못할 경우 유공 주식 전부를 반납하고 경영에서도 손을 떼겠다고 했으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기자들에게 단호하게 ‘3년이 지나고 보면 유공 인수가 능력 때문인지, 특혜 때문인지 판가름날 것이다.’라고 했던 주장도 결코 공염불이 아님을 증명했다. 유공 구성원과의 약속도 지켰다. 사장 취임 직후 유공 구성원과의 첫 대화에서 권한의 이양과 자율경영을 강조하면서, ‘유공 사장도 앞 으로 수년 내에 누군가 맡을 수 있어야 하겠다’고 밝힌 소신대로 1984년 2월 24일, 김항덕 수석부 사장을 대표이사 사장으로 선임하고 그 자신은 회장직으로 물러났다. 유공은 선경을 만나 3년 만에 SKMS 혁신을 통해 정상화에 성공하면서 자체 사옥도 확보했다. 1983년 5월 21일, 창립 20주년 만에 마련한 자체 사옥에 입주했다. ‘유공빌딩’이라 명명된 신사옥 은 여의도동 1번지에 선경건설이 건립한 것을 유공이 매입한 빌딩으로, 지하 3층 지상 19층의 최 신 부대시설을 갖춘 초대형 고층건물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완전 민영화도 달성했다. 1984년 10 월 22일, 대한석유지주를 합병하고 실제 대주주였던 정부 지분 50%를 확보함으로써 반쪽짜리 공기업이란 꼬리표까지 뗄 수 있었다. 1980년대 중반 최종현 선대회장은 전혀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운 시대가 도래하고 있음을 깨닫고 이에 대응하기 위한 사업구상과 경영기법 마련에 부심한 다. 당시 수직계열화의 실현을 목전에 두고 그가 고민했던 새로운 시대란 ‘글로벌리제이션’이었다. 050 CHAPTER 1. RESTART 선경을 만난 유공 종합에너지·석유화학기업으로 Jump Up 1980-1996 “글로벌리제이션에서는 전 세계의 선진기업들과 어떤 보호막도 없이 무한경쟁에 돌입하게 된다. 따라서 기업은 모든 나라와 전면적인 무한경쟁에 하루빨리 대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 기술, 자금, 마케팅 그리고 경영관리 등에서 우위에 설 수 있는 전략을 마련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들게 된 다. 기업으로서는 말 그대로 죽기 아니면 살기의 기로에 서게 만드는 것이 글로벌리제이션이다.” (최종현 선대회장, 조선일보 시론, 1994.12.8) “최종현 선대회장이 SKMS를 제정한 궁극적인 목적은 선경을 세계 일류기업으로 발전시키고자 하는 데 있었다. SKMS를 만든 지 10년이 지난 1989년, 최 회장은 SKMS를 통한 그 동안의 성과 를 되돌아보았다. 경영의 각 분야에서 명확한 정의를 통해 경영의 기본개념에 대한 혼란이 줄어 들고 구성원 간의 커뮤니케이션이 향상된 것으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이윤 극대화 측면에서는 성 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그는 개념 위주로 만들어진 SKMS를 경영자가 제대로 실천하기 위해 서는 구체적인 방법이 필요하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하여 최 회장은 SKMS를 구체적으로 실현하기 위해 ‘SUPEX추구’라는 도구를 제안했다. (조동성 서울대 교수, <SK그룹의 SUPEX>, 1999) SUPEX는 초일류를 뜻하는 ‘Super Excellent’의 조어로, SK 경영 매뉴얼에는 ‘인간의 능력으로 도달할 수 있는 최상의 단계를 꾸준히 추구하는 경영기법’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실행 가능해 보 이는 목표를 세워서 노력하는 것이나, 불가능해 보이는 목표를 세워놓고 노력하는 것이나 열심히 해야 하는 것은 똑같은데, 목표를 높이 잡으면 그만큼 장애요인을 더 파악하게 되고, 성취욕도 높 아지므로 같은 노력을 해도 그 성과는 더욱 커진다’는 것이 ‘SUPEX추구’의 논리이다. SUPEX 수준의 목표는 일을 빈틈없이 처리해야 달성할 수 있다. 일처리를 확실하게 하려면 ‘일 처리 5단계’라는 과정을 밟아야 한다. ①주어진 과제의 조건을 입체적으로 파악하고 ② 목표 달성 에 필요한 개인 및 단위조직이 해야 할 가장 핵심이 되는 과제를 결정한다. ③ SUPEX 수준의 목표 를 설정하고 ④ 목표 수준에 도달하는 데 장애가 되는 요인을 모두 파악한 후에 ⑤ 장애요인을 제 거한다. ‘SUPEX추구’에서는 캔미팅을 ‘조직 구성원들이 수시로 일상의 업무활동과 차단된 장소에서 정 해진 경영과제에 대해 격의 없이 자유롭게 논의하는 화합’으로 정의하고 있다. 1984년부터 본격 적으로 도입된 캔미팅은 처음에는 ‘상사 성토 자리’쯤으로 인식되다가 점차 건설적인 의사소통의 수단으로 정착되면서 효율적인 경영도구로서 주목을 받았다. SUPEX를 위한 또 다른 지원도구인 ‘SUPEX추구 리더십’은 구성원들이 자발적·의욕적으로 SUPEX추구를 하도록 부서장이 지도(Lead), 지원(Help), 점검(Cheak)하는 것을 말하며, ‘Profit Sharing System’은 ‘구성원들의 SUPEX추구 노력으로 회사가 이익을 더 많이 냈을 때 그 이익의 051 SK INNOVATION 60YEARS HISTORY BOOK 시점내용 도입시기1989년 정의Super Excellent, 인간의 능력으로 도달할 수 있는 최상의 단계를 꾸준히 추구하는 경영기법 배경개념 위주 SKMS 보완, 이익 극대화 위한 SKMS 실천의 구체적 도구로 활용 일처리 5단계①주어진 과제의 조건을 입체적으로 파악하고 ②목표 달성에 필요한 개인 및 단위조직이 해야 할 가장 핵심이 되는 과제를 결정한다 ③ SUPEX 수준의 목표를 설정하고 ④목표 수준에 도달하는 데 장애가 되는 요인을 모두 파악한 후에 ⑤장애요인을 제거한다 캔미팅조직 구성원들이 수시로 일상의 업무활동과 차단된 장소에서 정해진 경영과제에 대해 격의 없이 자유롭게 논의하는 화합 SUPEX추구 리더십구성원에 대한 부서장의 지도(Lead), 지원(Help), 점검(Check) 등 Profit Sharing System구성원들의 SUPEX추구 노력으로 회사가 이익을 더 많이 냈을 때 그 이익의 일부를 특별 상여금이나 특별 포상의 형태로 구성원들이 나눠 갖는 제도 SUPEX 개요 일부를 특별 상여금이나 특별 포상의 형태로 구성원들이 나눠 갖는 제도’를 일컫는다. SUPEX는 유공이 선경으로부터 이식받은 두 번째 혁신 DNA 도구였다. SUPEX추구를 통해 유 공은 글로벌제이션에 본격적으로 나서며 사업영역을 더욱 확장해 나갔다. 1988년 10월 이탈리아 몬테디페, 중국의 중국국제투자신탁공사(CITIC), 홍콩 석유화학유한공 사와의 제휴는 첫 글로벌 파트너링이었다. 유공은 30%의 지분으로 참여했으며, 1992년 10월 홍 콩 현지에 연산 7만 5,000톤 규모의 폴리스티렌공장을 완공하고 본격적인 제품생산에 들어갔다. 당시 홍콩 폴리스티렌 합작사업은 유공 화학사업의 국제화 전략의 일환이었다. 안정적인 수요 처 확보와 석유화학 제품의 다량 수입국인 중국시장 진출 그리고 중국 내 신규 사업 추진 기회를 포착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유럽 폴리스티렌 업계의 선두주자인 몬테디페와 중국 정부의 대외 무 역창구인 CITIC와의 협력관계를 구축했다는 전략적 의의가 있었다. 이 시기 R&D 글로벌리제이션도 본격적으로 시도했다. 1989년 11월, 선진국들의 기술보호주의 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국내기업 최초로 미국 코네티컷주에 미주동부 R&D센터를 설립했 다. 이후 미주동부 R&D센터는 신약개발의 전진기지로, 현지의 고급정보 습득과 이를 바탕으로 국 내 연구소와 연계된 선진 첨단기술 연구, 고급인력을 확보하기 위한 접점으로 활용되는 등 R&D 글로벌리제이션의 선봉역을 맡았다. 052 CHAPTER 1. RESTART 선경을 만난 유공 종합에너지·석유화학기업으로 Jump Up 1980-1996 02 종합에너지 기업 도전, ‘무자원 산유국의 꿈’ 현실로 마침내 터졌다. 1984년 북예멘 마리브 광구에서 자이언트급 매장량의 유전이 발견됐다는 소식에 선 경 임직원들은 만세를 불렀다. 거듭된 실패를 거울 삼아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던 나라를 산유국 반열 에 올리는 순간이었다. 이후 세계 곳곳에서 유전, 가스전 개발에 성공하면서 에너지 안보에도 톡톡히 기여했다. 석유는 한국경제의 대동맥이자 국가산업의 원동력, 그래서 유전개발 도전은 최종현 선대 회장의 국가적 사명감이기도 했다.053 SK INNOVATION 60YEARS HISTORY BOOK “세계 각국은 1970년대의 오일쇼크로 인해 대체에너지 개발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우리도 마찬 가지로 이러한 상황 변화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유공을 정유회사로만 운영할 것이 아니라 종합에 너지회사로 그 방향을 바꾸어야 한다.” “종합에너지에는 정유뿐만 아니라 석탄, 가스, 전기, 태양에너지, 원자력, 에너지축적, 배터리 시스 템 등도 포함되는데, 우리는 장기적으로 이러한 모든 사업을 해야 하며, 석유화학사업도 종합에 너지와 직·간접으로 관련되는 부문은 모두 다룰 수 있어야 한다.” “이렇게 하려면 다운스트림(Down Stream)까지도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게 되고, 설령 직접 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남을 시켜서 할 수 있는 간접적인 힘을 키울 수 있는 것이다. 원유도 현재는 남이 개발한 것을 도입하고 있지만, 앞으로는 원유도 우리가 직접 개발해 도입하는 방안을 강구 해야 한다.” (최종현 선대회장, 유공 부·과장급 간담회 연설, 1982.12.9) 1982년 5월 4일, 최종현 선대회장은 그룹 중장기 경영전략회의에서 선경에게는 특화전략을, 선 경합섬에게는 정밀화학 진출을, 유공에게는 종합에너지 및 종합석유화학사업을 중심으로 하는 장기계획을 세우도록 그 방향을 제시해 주었다. 특히 최종현 선대회장은 당시 선경그룹의 주력 3 사 중 유공에 대한 애착이 남달랐다. 몸소 대표이사 사장직을 수행하면서 장기경영계획의 구체적 인 밑그림까지 제시했다. 그룹 중장기 경영전략회의를 개최한 지 7개월 만인 1982년 12월 9일, 유 공 과장급 간담회 석상에서 유공의 새로운 진로를 구체화한 것이었다. 석탄, 가스, 전기, 태양광, 배터리는 물론 석유개발까지 아우르는 유공 혁신 설계도가 그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이었다. 이를 기반으로 유공은 1983년 7월, 장기경영계획을 완성하고 이후 무자원 산유국에 도전했으며, 석유 에서 LPG·LNG로 에너지 사업영역을 다각화했다. 004. 북예멘 마리브 유전에서 이룬 무자원 산유국의 꿈 장기경영계획에서 석유개발사업의 1차 목표는 1990년대 중반까지 자체 원유의 15% 이상을 개발 원유로 충당하는 것이었다. 이 같은 목표 설정에 따라 유공은 1983년부터 석유자원의 안정적 공 급이라는 사명감을 가지고 석유개발사업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석유개발사업은 단순히 사명감으로 참여하기에는 위험부담이 큰 사업이었다. 대규모 투 자를 필요로 하며, 사업의 시작인 탐사에서부터 개발·생산에 이르기까지 장기간의 자본 회임기간 이 소요되는 사업이었다. 054 CHAPTER 1. RESTART 선경을 만난 유공 종합에너지·석유화학기업으로 Jump Up 1980-1996 석유개발에 성공할 경우에도 탐사기간이 길게는 6~10년, 개발기간이 4~5년 넘게 걸려 최초 생 산이 시작되기까지 평균 10년이 소요되는 등 자본금 회수기간이 길었다. 무엇보다 성공할 경우 황금알을 낳는 거위처럼 막대한 수입이 기대되는 사업이기도 하지만, 성공률이 5% 미만으로 대 부분의 경우 탐사시추 결과 유징조차 발견하지 못하거나, 유징을 발견했다 하더라도 사업성이 없 어 개발을 포기해야만 하는 위험도가 극히 높은 사업이다. 실상이 이렇다 보니 처음 최종현 선대회장이 “유전이 없는 우리나라도 산유국이 될 수 있다”는 화두를 던지면서 ‘무자원 산유국 프로젝트’를 천명하고 나섰을 때 대내외에서 반대의 목소리가 높 았다. 밖에서는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살아야 한다”라는 등 냉소적인 반응이었고, 안에서도 사업 의 위험성을 설명하며 극구 말렸다. 숱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최종현 선대회장은 석유개발사업을 강행했다. 그는 세계적 석유기업 들의 경우 석유개발에서 얻는 수익이 전체 수익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고, 오랜 기간에 걸쳐 입증된 과학적 근거 하에 전략적으로 추진해 왔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그리고 그들이 불확실 한 경제성에도 불구하고 석유개발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한 점을 고려할 때 매우 매력적인 사업 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그보다도 유공이 석유개발사업에 뛰어든 이유는, 국가적 사명감 때문이었다. 석유는 한 국경제의 대동맥이자, 국가경제 발전의 원동력이었다. 대한민국 경제가 나락으로 떨어지는 1, 2차 석유파동을 해결하는데 앞장선 선경이었지만, 역설적으로 석유의 안정적인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 하다는 것을 가장 절실하게 판단한 것도 선경이었다. 따라서 유공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에너지 기업으로서 국가적 사명을 안고 석유개발에 나섰다. 본격적인 유전개발에 앞서 유공은 전담팀을 구성하고 석유메이저 기업들과 협력을 통해 다각 적인 자원개발 학습에 들어갔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전문가 집단을 통해 자원개발 전략도 마련 했다. 이 같은 학습 과정을 거쳐 의욕적으로 유전개발에 뛰어들었지만, 역시 석유개발사업의 여정은 험난했다. 국내 정유사로서는 유공이 최초로 해외 석유개발사업에 나선 것은 1983년 4월이었다. 미국의 코노코와 공동으로 인도네시아 카리문 광구 석유개발에 나섰다. 8개월에 거쳐 8개의 탐사 정을 시추했지만, 미미한 유징을 발견하는 데 그쳤다. 결국 유공은 1984년 1월 개발권을 인도네시 아 정부에 반납하고 철수했다. 카리문의 상처를 딛고 그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아프리카 모리타니였다. 미국의 옥스코와 육상 블록 제9 광구 개발에 참여했지만, 유징은 발견되지 않았다. 여기서도 유공은 개발권을 모리타니 정부에 반환하고 철수했다. 2번의 실패를 딛고 찾아간 곳은 북예멘 마리브 광구였다. 1984년 2월 29일, 유공을 주축으로 하는 한국의 북예멘 유전개발 컨소시엄이 마리브 광구 전체의 탐사개발권을 갖고 있던 미국의 헌 트오일로부터 24.5%의 지분을 인수했다. 055 SK INNOVATION 60YEARS HISTORY BOOK 시기내용 1984.1.26 유공 등 4개 정유사, 북예멘 유전개발 컨소시엄 형성에 합의 1984.1.31 마리브 광구 탐사시추 개시 1984.2.23 임시 국무회의, 북예멘을 해외개발투자 대상국으로 승인 1984.2.29 미국 헌트와 한국지분 24.5%에 관한 개발계약 체결 1984.3.28 동력자원부 사업 승인 1984.7.11 마리브 광구 알리프정에서 석유 발견 1985.11.14 북예멘 정부 상업적 규모 공식 확인 1987.12.9 생산시설 및 수출송유관 준공식 1987.12.13 상업생산 개시(일산 15만 배럴) 1987.12.24유공해운 소속 Y위너호 마리브유전 개발원유 1차 국내도입분 35만 배럴 북예멘에서 선적 1988.1.20 Y위너호 울산항 입항 마리브 유전 개발과 도입 과정 북예멘 개발원유 도입 자축연(1988.1.22)Nex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