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revious186 CHAPTER 2. UNIVERSAL SK 이름으로 아시아·태평양지역 에너지·화학사업 선도 1997-2008 경쟁력 강화에 매진했다. 이를 통해 석유사업의 e-Management 체계 구축, 윤활유사업 매출액 업 계 최초 3,000억 원 돌파, 석유개발사업의 대규모 유전 발견 등의 주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었다. 또 주유소의 고객 대응능력을 강화하기 위한 주유소 경영개선 프로그램, 새로운 경영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주유소의 토탈 라이프 스테이션화 추진 등 기존 사업모델을 대대적으로 혁신했다. 2002년 창립 40주년을 맞아 SK주식회사는 중국시장 진출을 본격화하는 등 가치혁신기업으로 의 도약을 위해 힘을 기울였다. 화학사업부문에서 세계적인 촉매 제조사인 지오리스트의 화학공 정용 촉매기술을 판매해 회사의 기술경쟁력을 대내외에 알리는 성과를 거두었고, 윤활유사업은 3 년 연속 두 자리 수 매출 증가율을 기록하며 3,614억 원의 매출을 달성했다. 한국 최초의 통합 마 일리지 서비스로 성공적인 새로운 사업모델로 평가받은 OK캐쉬백사업의 약진과 출시 8개월 만 에 텔레매틱스 시장의 선두주자로 나서게 된 엔트랙 등 새로운 시너지 창출을 위한 신규 사업 분 야에서도 많은 성과를 올렸다. 그러나 창립 40주년 이후 또다시 시련이 찾아왔다. 이라크 전쟁, 북한 핵문제, 급성 호흡기 질환 사스의 여파 등 국제적으로 불안과 혼란이 거듭되던 시절이었다. 국내 사정 역시 기업의 설비투자 감소, 개인신용 위기에 따른 소비심리 위축 등으로 경기침체가 이어졌다. 그러나 나라 안팎의 시 련은 빙산의 일각이었다. SK주식회사는 소버린 등 투기자본의 경영간섭 등으로 초유의 어려움을 겪었다. 갖은 시련에도 불구하고 SK주식회사는 묵묵히 남다른 경영성과를 이뤄냈다. 석유사업의 성장에 이어 화학사업도 올레핀, 아로마틱, 폴리머, 용제 등 다양한 제품군이 창출하는 안정적 수 익을 바탕으로 사업부 최대 영업이익인 3,738억 원을 달성했다. 윤활유사업도 그룹Ⅲ 기유의 고 수익 기반과 프리미엄 윤활유 시장의 성공적인 진입으로 663억 원의 이익을 거두었다. 2004년 외국 투기자본의 경영권 위협을 슬기롭게 극복한 SK주식회사는 이후 New SK 시동을 걸고 쾌속 질주를 이어갔다. 해외 석유개발사업에서 괄목한 만한 성과를 거두고, 화학·특수제품 연도자본총계매출액영업이익 19984,150,200 11,048,787 869,029 19995,877,720 11,237,096 792,512 20006,036,946 14,021,615 998,167 20015,717,786 14,114,862 565,361 20024,979,779 13,388,151 389,490 20035,247,956 13,788,626 671,284 20046,684,649 17,406,063 1,620,490 20058,110,561 21,914,582 1,204,902 20068,031,043 23,651,502 1,165,373 SK이노베이션 경영실적(1998~2006) 단위 : 백만 원187 SK INNOVATION 60YEARS HISTORY BOOK 분야에서도 중국진출을 확대하는 등 사업 전반에 걸쳐 큰 성과를 거두었다. 그 결과 2004년 매 출액 17조 4,061억 원을 기록했으며, 영업이익은 1조 6,205억 원을 달성하며 1조 원대를 돌파했다. 당기순이익도 1조 6,407억 원에 달해 정유·화학업계에서 처음으로 순이익 1조 원을 돌파하는 기 록을 세웠다. 이듬해 SK주식회사는 순이익 신기록에 이어 매출 기록도 갱신했다. 2005년 12월 인천정유를 인수하고 중국시장 진출기반 조성을 통한 ‘아시아·태평양지역 에너지·화학 메이저로의 도약’이라 는 중장기 목표에 한발 다가섰다. 아울러 지속적인 재무구조 개선과 투명경영으로 투자적격의 국 제신용 등급 획득, 기업지배구조 개선 우수사례 연속 선정 등 국내외의 신뢰를 확인하는 뜻깊은 성과를 거두었다. 이런 가운데 총 매출액 21조 9,146억 원을 기록, 처음으로 매출 20조 원을 돌파 하는 기염을 토해냈다. 온갖 시련을 딛고 SK 출범 8년 만에 이룩한 최대 경영실적이었다. 040. 인천정유 인수, 아태지역 4대 석유 메이저로 “SK주식회사가 9월 2일 인천정유와 함께 인천정유의 유상증자 참여 및 회사채 인수(각각 1조 6,000억 원)를 골자로 하는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이번 양해각서 체결로 SK주식회사의 인천정 유 인수가 본격화됨에 따라, SK주식회사는 ‘아태지역 에너지·화학 메이저로의 도약’이라는 중장 기 목표에 한발 다가서게 됐다. SK주식회사가 인천정유를 최종 인수하게 되면, 하루 정제능력은 현재 84만 배럴에서 111만 5,000배럴로 늘어나, 2위 업체인 GS칼텍스(65만 배럴)와 큰 격차를 벌이게 된다. 이는 아태지역 정유업체 중에서 중국 시노펙(329만 배럴), 페트로차이나(265만 배 럴), 신일본석유(117만 배럴)에 이어 4위 규모이다.” (사보 <SK>, 2005.9) 인천정유는 SK주식회사, GS칼텍스에 이어 국내 세 번째 정유사로 출발했다. 1969년 한국화약 (현 한화)과 미국 유니온오일이 합작, 경인에너지개발을 설립했으며, 1972년 경인에너지로 사명 을 변경했다. 그러다 유니온오일이 1983년 말에 한국에서 철수하면서 한화그룹 단독 경영 시대를 맞았다. 기업공개(1987), 한화에너지로 상호 변경(1994) 등 1990년대까지 흑자기업으로 안정 성 장을 유지했으나, 이후 경영악화로 시련을 겪었다. 1999년 현대정유로 경영권이 넘어가면서 인천정유로 상호를 변경하는 등 회생을 도모했으나 2001년 회사정리 절차가 개시되고 2003년부터 법정관리로 넘어갔다. 사업장은 인천 서구 원창 동 일대 161만 4,073㎡ 부지에 시설면적 1만 4,000㎡, 부대시설 17만 6,000㎡ 규모로, 수도권과 부평 미군부대 등에 유류를 공급하던 국가 주요시설이었다. 때마침 2000년대에 들어서 고유가 행진이 계속되면서 에너지 안보가 국제적 관심사로 떠오른 188 CHAPTER 2. UNIVERSAL SK 이름으로 아시아·태평양지역 에너지·화학사업 선도 1997-2008 가운데 세계 석유시장은 석유 메이저들의 M&A가 활발해지며 대형화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었다. SK주식회사 역시 아시아·태평양지역 메이저 플레이어로의 도약을 모색하고 있었다. 이때 인천정유가 매몰로 등장했고, SK주식회사는 그동안 축적해온 노하우와 경영기법을 적용 해 인천정유의 기업가치를 높이고 시너지를 강화한다는 전략에 따라 M&A 시장에 뛰어들었다. SK 주식회사는 2005년 8월 19일 국내 5대 정유사인 인천정유의 매각 입찰에 참여해 우선협상 대상 자로 선정됐다. 이후 SK주식회사는 그해 9월 2일 인천정유의 1조 6,000억 원에 달하는 유상증자 참여 및 회사채 인수를 골자로 하는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SK주식회사의 인천정유 인수계약은 2005년 12월 16일 서린동빌딩 본사에서 최태원 회장, 신 헌철 사장, 인천정유 김재옥 법정관리인 등이 참석한 가운데 체결됐다. SK주식회사는 양해각서 체 결 이후 정밀실사 등을 거쳐 1조 6,000억 원의 유상증자 참여 및 1조 4,000억 원의 회사채 인수 를 최종적으로 확정하고 이날 인수계약을 체결한 것이었다. 이로써 SK주식회사는 에너지 수요가 급격히 늘고 있는 중국 수출의 교두보를 구축할 수 있게 됐다. 이후 인천정유는 2006년 2월 인천지방법원으로부터 회사 정리절차 종결 결정을 받았으며, 2006년 3월 ‘SK인천정유’로 새롭게 출범했다. SK주식회사에 인수된 후 SK인천정유는 인천공장 제1상압증류시설을 재가동하는 등 경영정상 화를 이뤄냈고 양호한 영업실적도 거두었다. 그 사이 SK주식회사의 경영체제에 중요한 변화가 일 어났다. 구조개편으로 SK주식회사가 지주회사체제로 전환한 것이었다. SK에너지는 SK인천정유 합병을 통해 시너지 효과를 높이고, 규모의 경제를 실현함으로써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한다는 차 원에서 2007년 10월 31일 이사회를 열고 자회사인 SK인천정유에 대한 합병을 의결했다. 합병 기 일은 2008년 2월 1일로, 사명은 SK에너지를 유지하기로 했다. SK에너지는 양사 합병을 통해 사업역량 집중을 통한 기업 경쟁력 강화, 글로벌 시장 진출을 통 한 지속적인 성장추진 기반 구축, 구매·생산·판매·R&D 등 사업 전 분야에서 경영효율성 증대, 회사 규모 확대에 따른 글로벌 협상력 제고 등 유무형의 기업가치 상승으로 주주가치가 제고되는 기대 효과를 얻을 것으로 전망했다. 양사의 합병 비율은 SK에너지 1대 SK인천정유 0.0330024 비율이었다. SK인천정유가 비상장 회사인 만큼 통상의 절차에 따라 외부 전문기관을 통해 SK인천정유의 주당 가치를 6,160원으로 산정했고, 상장법인인 SK에너지의 기준 주가(18만 6,653원)를 고려해 합병비율을 결정했다. SK인 천정유의 기업가치는 약 2조 1,560억 원으로 평가받았다. 당시 SK에너지는 SK인천정유의 주식 90.63%를 보유하고 있었다. SK에너지 보유지분에 대해서는 합병신주를 교부하지 않았으며, SK에 너지 지분 외의 9.37%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주주들에 대해서는 합병비율에 따라 SK에너지 신 주를 발행하기로 했다. 이후 2007년 12월 양사는 주총을 대신해 열린 이사회에서 합병과 관련된 최종 의사결정을 마무리하고, 2008년 2월 1일 합병절차를 완료했다. SK에너지는 기존 울산공장과 더불어 인천지역에도 생산기지를 확보함으로써 국내 최초로 189 SK INNOVATION 60YEARS HISTORY BOOK 시기내용 1969 국내 세번째 정유사로 탄생. 경인에너지개발(한국화약, 유니온오일) 1972 경인에너지로 사명 변경 1983 미국 유니온오일 철수, 한화그룹 단독 경영 1987 기업공개 1994 한화에너지로 사명 변경 1999 현대정유로 경영권 이양. 인천정유로 사명변경 2001 회사정리 절차 개시 2003 법정관리 2005.8.19 인천정유 매각 입찰, SK주식회사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2005.9.2 인천정유 인수 양해각서 체결 2005.12.16 최종 인수계약 체결 2006.2 인천지방법원 회사정리 절차 종결 결정 2006.3 SK인천정유로 새 출발 2007.10.31SK에너지, SK인천정유 합병 결의 2008.2.1 합병 완료 SK인천정유 주요 연혁 SK인천정유 출범 기념행사(2006.3.7)190 CHAPTER 2. UNIVERSAL SK 이름으로 아시아·태평양지역 에너지·화학사업 선도 1997-2008 ‘Multi Refinery 시스템’을 갖추고, 중국을 중심으로 글로벌 사업 확대 기반을 확보할 수 있었다. 또 확대된 생산 규모와 지리적 이점을 적극 활용해 수출 확대에 한층 강한 드라이브를 걸 수 있었다. 아울러 기업 규모가 확대됨으로써 글로벌 시장에서 협상력을 높일 수 있었다. 이는 회사가 역점을 두고 있는 자원개발 사업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041. 또 하나의 지상유전, 고도화시설 완공 “바리토너 김동규 씨와 소프라노 김은경 씨의 환상적인 하모니가 SK에너지 울산CLX부문에 울려 퍼졌다. 지상유전으로 에너지 르네상스 시대를 열 제3고도화시설 준공을 축하하는 감동적인 하 모니였다. 제3고도화시설 준공을 축하하기 위해 울산CLX부문을 방문한 이명박 대통령과 원세훈 행정안전부 장관, 이윤호 지식경제부 장관, 박맹우 울산시장을 비롯한 지역 국회의원, 협력사 대 표 등 6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에너지 강국을 향한 도약을 위해 SK에너지가 지난 15개월간 진 행해온 이번 프로젝트의 과정과 고도화시설의 국가적 중요성 및 건설과정의 다양한 비하인드 스 토리를 담은 영상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이날 에너지 강국을 향한 대역사의 시작을 축하하기 위해 참석한 이 대통령은 치사를 통해 ‘지방 정부는 기업활동을 적극 지원하고, 기업은 지역사회에 공헌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올 상반기 석유류 제품이 반도체·자동차를 넘어 국내 최대 주력 수출품목으로 성장 한 것에 대한 정유업계의 노력을 치하하고, 이번 FCC공장 가동이 지난 광복절 경축사에서 강조한 ‘녹색성장의 발판 마련을 위한 에너지 총력투자’에 부합하는 핵심 전략사업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최태원 회장은 기념사를 통해 ‘석유제품이 국내 수출 1위 품목이 되어 국가 경제발전에 이바 지하고 있다’며, ‘이번 고도화시설 건설로 4조 원 가량의 수출증대를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아 울러 ‘친환경 기술 및 미래 산업에 대한 투자, 인재채용 등을 확대해 경제 살리기에 앞장서는 동시 에, 2015년 10만 배럴의 자주원유 확보를 통해 에너지 안보의 역군이 되겠다’고 강조했다.” (사보 <SK>, 2008.9) 고도화시설은 원유 정제 과정에서 생산된 벙커C유 등 가격이 저렴한 중질유를 촉매를 이용해 휘발유와 경유·경질 올레핀 등 부가가치가 높은 제품으로 바꾸는 설비를 말한다. 흔히 ‘지상 유전’ 이라고 불릴 정도로 정유사의 수익성 개선에 기여하는 시설로 알려져 왔다. 석유자원의 재처리 측면에서 중요성을 갖고 있는 고도화시설의 비율은 때때로 국가경쟁력을 평가하는 척도 중 하나로 활용되기도 한다. 2007년 1월 기준 고도화 비율이 미국 55.8%, 독일 36.7%, 이탈리아 46.9%, 일본 24.6% 등을 나타내고 있었다. 벙커C유가 원유 정제량의 절반 가까 이 나온다는 점에서 이들 국가는 사실상 자국에서 생산되는 벙커C유 전부를 재처리할 수 있는 능191 SK INNOVATION 60YEARS HISTORY BOOK 력을 갖추고 있는 셈이었다. 반면에 우리나라는 2008년 5월 기준 18.2%의 저조한 고도화 비율을 갖추고 있었다. SK에너지는 기존에 하루 생산량 5만 7,000배럴의 FCC 1기와 하루 생산량 4만 5,000배럴의 HOU 등 2기의 고도화시설을 보유하고 있었다. 턱없이 부족한 국내 고도화시설 확대를 위해 SK 에너지가 제3고도화시설(제2FCC) 투자를 시작한 건 2004년 말이었다. 당시는 고유가 시대가 고 착화되면서 기존의 단순 원유 정제방식만으로는 원가경쟁력을 확보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따라서 고도화시설의 건설은 원가부담을 줄여 고유가시대를 헤쳐 나가는 효과적인 방안 중 하 나로, 막대한 자본이 투자되는 사업이지만 국내 정유업계의 맏형으로서 지속적으로 투자를 확대 할 의무가 있었다. 특히 해외 유수의 석유 메이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자원개발을 통한 원유 확 보량이 적은 우리나라의 경우 국제 석유시장에서 원유보다 저렴하게 거래되는 중질유 같은 저급 원료에서 고부가가치 경질 유제품을 생산하는 원유가치 극대화가 절실했다. SK에너지가 제3고도화시설의 신설을 추진할 당시 중동에서도 정유플랜트 건설 붐이 일었다. 그동안 세계시장에 석유를 팔아온 중동국가들이 직접 정유사업과 석유화학사업에 나서고 있었다. 이 때문에 프로젝트 수행기간을 최대한 앞당겨 고도화시설을 구축, 가동함으로써 경쟁력을 높이 는 것이 핵심과제였고, ‘패스트 트랙(Fast Track)’으로 프로젝트가 수행되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중동에서 플랜트 건설이 확산되면서 구매시장에서의 부품조달이 여의치 않았다. SK에 너지는 납기가 긴 기자재를 대상으로 네트워크를 총동원해 과감히 선 발주하는 전략을 추진했다. 하지만 구매를 위해서는 설계자료가 있어야 하는데 아직 라이센스가 결정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다행히 SK에너지에게는 제2고도화시설이 있었다. 제2고도화시설을 기준으로 가설계를 하고 ‘샵 스페이스(Shop Space)’를 확보해 적기에 자재구매가 이루어질 수 있었다. 이런 노력으로 2006년 본격적인 공사가 이루어지기까지의 프로세스를 대폭 단축하며 이후 정상적인 일정으로 프로젝트 를 진행할 수 있었다. 2006년 7월 울산 용연동 일원 39만 6,000㎡의 임야에 대한 부지 조성공사를 시작으로 착수된 제3고도화시설 건설은 세계적인 엔지니어링기업인 스톤앤웹스터(Stone & Webster)가 기본설계 를 진행했다. 이후 2007년 1월 제3고도화시설 공사가 본격 착공에 들어갔다. 시운전 담당조직으로는 2006년 8월 기존 고도화시설의 운영인력은 물론 정유, 폴리머, 동력, 안전환경 등 다양한 조직의 구성원 176명이 모여 드림팀을 구성했다. 이어 라이센서의 설계도면 을 철저히 검토하고 운전원 OJT도 실시했다. 또 실제 FCC 등 유사 공정으로 운전원들을 파견해 실전경험을 쌓도록 했다. 주요 기자재 구입을 위해 직접 해외에 나가는 고행도 마다하지 않았다. SK에너지 창사 이래 최대 규모인 약 2조 원을 투자한 제3고도화설비는 그 규모만큼이나 큰 자 부심을 갖게 만드는 기록들을 양산했다. SK에너지는 6개월간의 부지정지 공사 후 2007년 1월부 터 울산CLX에서 이 설비의 건설을 시작해 15개월 만인 2008년 3월 말에 완공했다. 이는 초대형 플랜트 공사임을 고려할 때 세계적으로도 최단기에 건설을 완료한 것으로 평가받았다. 더욱이 통192 CHAPTER 2. UNIVERSAL SK 이름으로 아시아·태평양지역 에너지·화학사업 선도 1997-2008 울산CLX 제3고도화시설 준공식(2008.9.3) 울산CLX 제3고도화시설 전경(2009)193 SK INNOVATION 60YEARS HISTORY BOOK 상 3개월 이상 소요되는 시운전을 2개월 만에 완료했고, 공정 이상과 사고 한 건도 없이 완벽하게 수행해 SK에너지의 우수한 공정운영 능력을 다시 한 번 입증했다. 제3고도화시설의 건설에 사용된 배관 파이프의 총 길이는 1,257km로 울산-김포를 5회 왕복할 수 있는 길이였다. 철골 사용량은 3만 5,000톤으로 서울의 상암월드컵경기장 건설 때 사용된 철 골 사용량의 1.5배, 에펠탑에 사용된 철골의 5배였고, 콘크리트 포설량은 20만 ㎥로 레미콘 3만 5,000대 분량이 사용되는 등의 진기록을 줄줄이 양산해냈다. 하지만 제3고도화시설 건설 과정에서 무엇보다도 자랑할 만한 것은 공사기간 중 하루 평균 5,000명 이상, 연인원 127만여 명이 공사에 참여했지만, ‘완전무재해 1,631만 안전인시’라는 대기 록을 세워, 종전 국내외 건설사상 최고 안전인시 기록을 돌파한 것이었다. SK에너지는 2008년 3월 제3고도화시설인 하루 처리능력 6만 배럴 규모의 제2FCC를 완공했 다. 제2FCC 제조시설은 2008년 6월 시운전을 완료하고 상업생산에 돌입했다. 이로써 SK에너지 는 기존 FCC와 함께 고도화설비 처리능력이 하루 16만 2,000배럴로 확대됐으며, 고도화 비율도 기존 9%에서 14.5%로 향상됐다. 특히 당시 준공된 제3고도화시설의 중질유 탈황공정은 고도화시설에 원료가 주입되는 전 단계 공정으로 중질유에 함유돼 있는 황성분을 빼내는 친환경 설비였다. 이 공정으로 하루 620톤(연간 23만 톤)의 유황성분을 완전히 제거해 대기환경 개선효과를 통한 석유자원의 녹색에너지화를 기 대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당시 공장 가동으로 SK에너지는 연간 3조 4,000억 원의 원유도입 비용 절감효과 및 연간 4조 원의 석유류 제품 수출증대로, 연간 약 7조 원 이상의 국제수지 개선에 기여 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즉, 국가경쟁력을 확보하고 경제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수행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당시 시장상황으로 볼 때 정유업계는 고도화시설을 통한 배럴당 30달러 이상의 부가가치를 추 가로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았다. 중질유의 경우 황 함량이 많고, 사용처가 국한돼 있어 판 매 시 생산원가에도 못 미치는 적자 요인을 감수해야만 했다. 또 시장의 수요도 휘발유·경유·등유 등 경질유 위주로 재편되고 있는 추세여서 당시 고도화시설 준공은 SK에너지가 글로벌 메이저 컴 퍼니로 한발 다가선다는 남다른 의미가 있었다. 시기내용 2006.7 부지 조성공사 개시(울산 용연동 39만 6,000m2) 2006.8 드림팀 구성(176명) 2007.1 착공 2008.3 패스트 트랙으로 최단기 건설 완료(‘완전무재해 1,631만 안전인시’ 달성, 고도화설비 처리능력 하루 16만 2,000배럴로 확대, 고도화 비율 9% → 14.5%) 울산CLX 제3고도화시설(FCC) 건설 과정194 CHAPTER 2. UNIVERSAL SK 이름으로 아시아·태평양지역 에너지·화학사업 선도 1997-2008 14 사회혁신 재충전, 행복경영 속으로 이사회 중심경영의 도입은 소버린 같은 투기자본을 몰아내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이사의 70% 이상을 사외이사로 채우고 투명경영위원회 등 4개 위원회를 신설해 전문성을 강화했다. ‘일하는 이 사회’라는 슬로건 아래 해외에서 이사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적극적인 분사전략을 구사해 ‘따로 또 같 이’ 경영체제를 확립하는 데 이사회 역할도 컸다. 또한 내트럭사업, 화물차휴게소, 울산대공원 등은 SK가 속한 생태계의 사업자나 주민에게 사회적 가치를 나누는 이해관계자경영의 사례였다.195 SK INNOVATION 60YEARS HISTORY BOOK “SK가 ‘한국의 발렌베리’를 꿈꾸고 있다. 발렌베리는 150년 동안 5대에 걸쳐 북유럽의 부국 스웨 덴의 산업화를 이끌어온 대재벌 가문이다. 스웨덴 경제를 좌지우지하지만, 투명경영과 적극적인 사회공헌으로 국민들의 존경을 받고 있다. 2004년 오너의 1인 지배와 불투명한 지배구조, 계열 사 간 순환출자로 특징지어지는 재벌의 구태와 결별하고 ‘포스트 재벌 프로젝트’를 강력하게 추진 해온 SK는 국내 대기업 중 이러한 발렌베리 모델에 가장 근접한 기업집단으로 꼽힌다.” 2008년 9월 8일 <한국경제신문> ‘한경비즈니스’에 나온 SK 특집기사의 일부분이다. 그룹이 선경에서 SK로 전환하면서 SK 대표기업으로 새출발한 SK주식회사는 이후 놀라운 성장을 이뤄냈 다. 1998년 11조 원 가량이었던 매출액은 8년 만인 2006년 약 24조 원으로 증가했고, 영업이익 도 8,000억 원대에서 1조 2,000억 원대로 늘어나면서 매출 20조 원대, 이익 1조 원대 시대를 열 었다. 그 결과 그룹의 재계 순위도 5위에서 3위로 두 계단이나 상승했다. ‘한경비즈니스’는 그 성공 요인을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최태원 회장 취임 이후 10년간 SK의 변화는 크게 3가지 측면에서 이뤄졌다. 첫째 매출 및 이익 증대를 통해 재무구조를 개선했고, 둘째 사업구조를 내수기업에서 수출기업으로 바꾸었다. 마지 막으로 이사회 중심 경영, 지주회사 전환을 통해 지배구조를 개선했다. 2004년 10월 제주도에서 열린 CEO세미나에서 최태원 회장은 ‘사업구조, 재무구조, 지배구조 개선을 통해 신뢰받는 기업 을 만들겠다’고 강조했고, 실제로 그 약속은 지켜졌다.” 042. 소버린 투기자본에 정공법으로 응수 문제의 발단은 출자총액제한제도와 IMF 외환위기였다. 정부는 1986년 12월 공정거래법 개정을 통해 ‘경제력 집중’ 억제를 위한 대규모 기업집단 정책의 일부로 출자총액제한제도를 도입했다. 이 제도는 소버린이라는 외국자본이 SK주식회사의 주식을 매집하고 경영권까지 넘보는 빌미를 제공 했다. IMF 외환위기 역시 투기자본이 손쉽게 국내에 입성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했다. 기업가치에 비해 상대적으로 시장가치가 낮은 국내 대기업 상황에서 정부는 IMF 외환위기 극복 방안의 하나 로 외자유치를 강조하면서 출자총액제한제도를 강화했다. 이전까지만 하더라로 대주주의 지분율을 10% 이하로 낮추되 경영권을 보장한다는 의미에서 순환출자를 허용했지만, IMF 환란 이후 국민의 정부는 상호출자는 물론 순환출자까지 제한했다. 외국자본에게는 자유롭게 고삐를 풀어주면서 국내 대주주의 손발을 묶는 불공정한 자본시장 상 황을 조성한 것이었다. 소버린은 SK글로벌 사태의 빈틈을 노리고 SK주식회사 경영권에 침입했다. 2003년 4월 3일, 외국계 투자사 소버린 자산운영의 펀드 자회사인 크레스트 시큐리티즈(Crest Nex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