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revious166 CHAPTER 2. UNIVERSAL SK 이름으로 아시아·태평양지역 에너지·화학사업 선도 1997-2008 12 거침없는 해외시장 개척 또 하나의 SK그룹을 중국에 만들겠다는 ‘차이나 인사이더’ 전략은 SK 해외시장 개척의 모델이다. 수 출 일변도에서 벗어나 현지화까지 중시하는 글로컬라이제이션보다도 하는데 이보다도 한 걸음 더 나 아간 전략이다. 단기이익에 목매지 않고 상생의 먼 길을 보자는 자세다. 인도네시아에서 또다른 SK를 세운다는 각오로 현지 대통령을 상대로 담판을 지은 것이 파트라SK의 설립이다. 고급윤활유 시장 세 계 1위라는 업적을 가능케 했다. 167 SK INNOVATION 60YEARS HISTORY BOOK “사업은 정체되고, 기대는 높아져만 가고 있는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답은 미래의 무대인 세계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과연 어떻게 하면 우리가 세계로 나아가서 성공 을 하고 성장과 안정을 동시에 얻을 수 있을까요? 그 답이 파부침주(破釜沈舟)입니다. 새로운 트 렌드에서 성장하기 위해서는 솥을 깨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최태원 회장, 신년사, 2010) 2000년대 SK주식회사의 거침없는 해외시장 개척의 심정은 부진불생(不進不生)이었다. 나가 지 않으면 살 수 없다. 2006년 베트남에서 진행된 CEO세미나의 최태원 회장 메모지 첫번째 단어 였다. “세계를 우리의 시장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그동안의 성공이나 우리가 갖고 있던 기득권, 우 리가 그동안 안정적으로 영위해오던 비즈니스 모델을 깨고 혹은 버리고, 새로운 성공을 향해 과감 하게 도전을 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던 최태원 회장의 마음처럼 SK주식회사는 차이나 인사이더와 글로벌리제이션을 향해 질주했다. 차이나 인사이더 과정에서는 글로컬라이제이션이라는 확실한 전략을 가지고 수출 중심 전략 에서 벗어나 현지화에 집중했다. SK중국투자유한공사라는 지주회사를 설립하고 석유화학 관계 사들의 중국시장 진출을 적극 지원했다. 중국 제1의 석유회사인 시노펙과의 협력도 강화함으로써 고급아스팔트 시장을 선점해 나갔다. 인도네시아 파트라SK 설립은 글로벌 파트너링의 백미였다. “내수에만 안주해선 고급 윤활기유 시장의 선도 사업자가 될 수 없다”는 최태원 회장의 신념에 따 라 인도네시아 속에 또 하나의 SK를 건설했다. 현지 대통령과 담판을 짓는 최태원 회장의 결단력 의 결과, SK주식회사는 고급윤활유 시장 세계 1위의 위상을 공고히 다질 수 있었다.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의 JX 닛폰오일·에너지(JX NOE)와도 글로벌 파트너십을 구축, 울산CLX 내 PX공장과 제3윤활기유공장 건설 합작을 통해 기업가치를 제고하고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했다. 034. 차이나 인사이더 “오시느라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이쪽으로 오십시오. 장 주석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1994년 3월 9일 오전 9시, 중국 베이징 조어대 접견실 앞에서 최종현 선대회장이 공산당 간부의 안내를 받았 다. 한국 기업인으로서는 최초로 중국 최고지도자를 접견하는 순간이었다. 장쩌민(江澤民) 주석은 반갑게 맞아주었다. 그는 한중 수교 과정에서 SK가 민간 채널로서 적지 않은 역할을 한 것에 내심 고마움을 느끼고 있었다. “나에게는 명함이 2개 있습니다. 하나는 전경 련 회장 명함이고, 또 다른 하나는 그룹 회장 명함입니다.” 최태원 회장의 자기소개에 장 주석이 관심을 표시하고 SK의 사업에 대해 묻자, 그는 더욱 자신 감을 가지고 말을 이어 나갔다. 168 CHAPTER 2. UNIVERSAL SK 이름으로 아시아·태평양지역 에너지·화학사업 선도 1997-2008 “중국에 진출한 외국계 기업은 중국에서 단기간에 이익을 내려고 해선 안 됩니다. 길게 보면서 서 로 윈-윈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합니다. 우리는 중국에서 번 돈을 다시 중국에 투자할 계획입니 다. 중국은 외국이 아니라 확장된 우리의 내수시장입니다.” 장 주석은 최 회장의 말에 크게 반색을 하며 이렇게 화답했다. “중국은 SK의 거시적 안목에서의 중국사업 추진을 환영하는 바입니다.” (<SK60년사>) SK의 중국에 대한 열정은 꽤 오랜 기간을 자랑한다. 1980년 초부터 중국과 간접교역을 시작했 고, 한중수교의 밀사로서 ‘잠자던 숲속의 거인’을 깨운 주인공이기도 하다. 그 덕에 한중수교 이전 인 1991년 2월 한국 기업으로는 최초로 베이징사무소를 개설한 바 있었다. SK주식회사 역시 유화 업계 최초로 1993년 8월 중국 베이징에 지사를 개설했다. 베이징지사는 중국의 급속한 개방으로 관련 업무량이 증가함에 따라 대중국 사업의 효율적인 수행을 위해 설치했으며, 이후 석유제품의 판매, 합성수지 시장 개발 및 기술서비스 지원, 정보 수집 및 조사 활동 등을 수행했다. 1990년대 SK주식회사는 베이징지사를 거점으로 활용하면서 중국에서 신약개발, 윤활유 판매, 특수용기 및 특수폴리머 제조 등의 사업을 가시화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특히 아스팔트는 1993년 첫 수출이 이루어진 이후 중국 아스팔트시장에서 점유율을 빠르게 높이는 등 활동이 두드러졌다. 중국지사도 베이징에 이어 상하이, 광저우 등 3개 지사로 확대됐다. 새천년을 앞두고 중국사업에 또 한번의 변화가 감지됐다. 1999년 12월 중국 베이징에서 최태원 회장이 참석한 가운데 CEO세 미나가 열렸다. 당시 베이징 CEO세미나에서는 ‘또 하나의 SK를 중국에 만든다’는 전략이 수립됐 다. 이윽고 2000년 신년사에서 최태원 회장은 ‘차이나 인사이더’를 천명했다. “우리는 중국에 집중할 것이다. 중국 시장은 세계의 모든 다국적 기업이 경쟁하는 진정한 의미 에서의 글로벌 시장이다. 이곳에서 다른 기업들과 경쟁하여 이길 수 있을 때 진정한 의미의 글로 벌 기업이 되고, 결과적으로 기업가치의 향상을 가져오게 될 것이다.” 당시 중국사업의 전략은 최종현 선대회장의 글로벌리제이션에 현지화 개념을 접목한 ‘글로컬 라이제이션(Glocalization)’이었다. 이전까지의 수출 중심 전략에서 벗어나 현지화를 특히 강조했 다. 이후 SK는 글로컬라이제이션의 기치 아래 차이나 안사이더를 가속화했다. SK주식회사도 그 룹의 차이나 인사이더 전략에 따라 빠르게 성장하는 중국 화학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2002년 6 월 상하이에 판매법인인 ‘SK종합화학국제무역상해유한공사’를, 2004년 10월 28일에는 자본금 3,000만 달러를 들여 중국 베이징에 지주회사로 ‘SK중국투자유한공사’를 설립했다. 최태원 회장은 SK중국투자유한공사 설립행사 기념사를 통해 “무한한 성장 잠재력을 가진 중국 이야말로 SK 제2의 기지”라고 말하고 “최근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고 있는 해외 자원개발사업과 더불어 중국사업은 SK의 새로운 성장엔진이 될 것”이라며, 중국사업에 대한 의지를 천명했다. 또 한 “현지화를 바탕으로 한 사업 패러다임의 변화 없이는 중국의 폭발적인 성장을 따라잡을 수 없169 SK INNOVATION 60YEARS HISTORY BOOK SK중국투자유한공사 설립(2004.10) 시기내용 1993.8 유화업계 최초 베이징지사 개설 1999.12 중국 베이징 CEO세미나에 ‘또 하나의 SK를 중국에 만든다’ 전략 수립 2000 최태원 회장 신년사 '차이나 인사이더' 천명 2002.6 상하이에 판매법인 ‘SK종합화학국제무역상해유한공사’ 설립 2002.12 시노펙과 합작, 산시성 시안에 아스팔트 생산법인 설립 2004.10.28 베이징에 지주회사 ‘SK중국투자유한공사’ 설립 2004.11시노펙과 합작, 상하이에 용제 생산·마케팅 법인 설립 2006 용제 생산공장 상업생산 개시 차이나 인사이더 추진 과정170 CHAPTER 2. UNIVERSAL SK 이름으로 아시아·태평양지역 에너지·화학사업 선도 1997-2008 다”면서, “중국사업의 성공을 바탕으로 진정한 글로벌 메이저로 도약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후 SK중국투자유한공사는 SK주식회사 계열사들이 중국시장 진출을 가속화하고 새로운 성 장동력을 발굴해 나가는 발판이자 중국사업 전체를 총괄하는 독립 지역본부로서의 역할을 수행 했다. SK종합화학 판매법인 역시 설립 이후 중국에서 직접 내수판매를 통한 수익성 제고와 제품 판매의 안정적인 가교 역할을 수행했다. 또한 중국 내 마케팅 네트워크 구축을 강화하기 위해 상 하이에 이어 베이징, 칭다오, 청두, 샤먼, 우한 등에 판매거점을 마련했다. 이를 통해 제품 판매에서 운송까지 밸류체인을 확대하고 물류비용을 절감함으로써 경쟁력을 더욱 강화할 수 있었다. 특히 SK주식회사는 중국 제1석유회사인 시노펙과의 협력을 강화했다. 1994년 이래 공동협 력 협약을 체결하고 있는 시노펙과 사업별 협력을 통해 중국시장 경쟁력을 강화해 나갔다. 먼저 2002년 12월 중국 산시성 시안에 아스팔트 생산법인을 설립하고 중국 내 도로 관련 사업에 진출 했다. 시노펙이 보유한 연간 56만 톤 규모의 시안 아스팔트공장에 50대 50의 지분투자 형식으로 합작법인을 설립하고 2003년 생산체제에 돌입했다. 총 2,200만 달러를 공동투자해 설립된 생산법인은 30만 톤 규모로 아스팔트 생산을 시작해 시 노펙사는 원료를, SK주식회사는 고급 아스팔트 기술을 제공했다. 이 사업은 전 세계 메이저 화학 기업들의 각축장인 중국시장에서 SK주식회사가 국내 기업으로는 최초로 중국 최대 에너지·화학 기업인 시노펙과 진행하는 합작사업이라는 의미가 있었다. 시노펙 합작 두 번째 작품은 친환경 용 제(Solvent) 생산·마케팅 법인 설립이었다. 2004년 11월 26일 중국 시노펙 산하의 까오차오석유 화학(高橋石化)과 합작해 상하이에 관련 법인을 설립했다. 용제 생산·마케팅 법인은 양사가 50대 50의 지분으로 총 3,000만 달러를 투자해 연간 6만 톤의 친환경 탈방향족 용제를 생산할 수 있 도록 설비를 갖췄다. SK주식회사가 자본투자와 함께 용제 생산기술과 마케팅 노하우를 제공하고, 시노펙사는 생산원료와 공장부지, 전력·용수 등 생산과 관련된 인프라를 제공했다. 생산공장은 법 인 설립과 함께 착공에 들어가 2006년부터 상업생산에 돌입했다. 035. 인니 대통령 직접 선택한, 파트라SK 1995년 윤활유사업에 처음으로 뛰어들었던 SK주식회사는 지속적인 설비증설을 통해 안정적인 윤활기유 생산량을 확보하면서 2000년대 중반 해외 윤활기유시장 1위 독주체제를 구축했다. 성 장의 주요 요인은 적극적인 시장 대응에 있었다. 2000년대 들어 윤활유 완제품의 품질 고급화 및 고성능화 추세에 따라 고급 윤활기유인 그룹 Ⅲ시장이 급팽창했다. 하루 4,000배럴 규모의 제1윤활기유공장을 가동해 오던 SK주식회사는 시 장 트렌드에 맞춰 고급 윤활기유의 공급량이 부족할 것을 예상하고 설비개선을 통해 제1윤활기유 공장의 생산능력을 지속적으로 확충하는 한편, 2002년부터 제2윤활기유공장 건설을 추진했다.171 SK INNOVATION 60YEARS HISTORY BOOK 제2윤활기유공장은 2004년 9월 준공됐고, 이로 인해 기존 제1윤활기유공장 포함 그룹Ⅲ 윤활 기유 생산능력은 하루 1만 7,000배럴로 늘어났다. 한편 제2윤활기유공장에는 SK주식회사가 독자 적으로 개발하여 미국·유럽 등 세계 22개국에서 특허를 받은 UCO 고급 윤활기유 제조공정기술을 적용, SK주식회사의 기술력을 다시 한번 전 세계에 입증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SK주식회사는 제2 윤활기유공장 가동으로 고급 윤활기유 브랜드인 YUBASE의 시장지배력을 더욱 높이면서 그룹Ⅲ 기유시장 세계 1위 자리를 확고히 다질 수 있었다 “내수에만 안주해선 고급 윤활기유 시장의 선도 사업자가 될 수 없다.” 최태원 회장은 갓 입성한 세계 1위 등극에 만족하지 않았다. 계속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 고 있었고, 무엇보다 급증하는 수요에도 불구하고 원재료 확보에 어려움이 있었다. 난관에 부딪힌 윤활유사업의 해법을 최태원 회장은 글로벌에서 찾았다. 글로벌 파트너링 탐색 과정에서 SK주식 회사는 인도네시아에서 생산되는 미나스 원유에서 추출되는 미전환 잔사유가 윤활기유의 최적의 원료라는 사실에 주목했다. 미나스 원유는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에 있는 미나스 유전에서 생산 되는 원유로 중유분을 통해 고품질의 윤활유를 제조할 수 있었다. 또한 인도네시아는 윤활기유의 원재료를 현지에서 조달해 생산성을 증대할 수 있을뿐만 아니라 유럽, 아시아, 미주 등 글로벌 시 장으로의 공급이 용이하다는 지리적 이점도 갖추고 있었다. SK주식회사는 자사가 보유한 세계 최고의 기술이라면 글로벌 파트너링이 어려울 것 없다는 판 단하에 인도네시아 내에서 오일과 가스사업을 독점하고 있던 최대 국영석유기업인 페르타미나사 를 적극적으로 공략했다. 페르타미나의 저가의 원료 공급 경쟁력과 SK의 세계 최고인 그룹Ⅲ 윤 활기유 생산 기술이 만나 서로 윈-윈하는 케이스를 창출할 수 있다고 확신한 것이었다. 합작 준비 과정은 만만치 않았다. 당시 인도네시아의 불안정한 정치적 상황, 한국 기업에 대한 우호적 이미지 형성 부족 등의 난관을 헤쳐나가야 했다. SK주식회사는 합작 성사 가능성 최대 분 수령인 D-day 일정을 부산 APEC이 열리는 2005년 11월로 잡았다. 이날 최태원 회장과 인도네시 아 유도요노 대통령의 전격 회동 시나리오를 짠 것이었다. 프로젝트 기한 일정이 명확이 정해지자, 인도네시아법인이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최태 원 회장의 주문에 맞추기 위해 자카르타 한 호텔에서 합숙하다시피 하면서 500쪽 분량의 보고서 구분내용 소재지인도네시아 두마이 합작내용SK루브리컨츠(65%), 페르타미나(35%) 투자 금액총 2억 1,500만 달러(약 2,429억 원) 생산 현황그룹Ⅲ 윤활기유, 하루 9,000배럴 상업 생산2008년 4월 30일 파트라SK 윤활기유공장 개요172 CHAPTER 2. UNIVERSAL SK 이름으로 아시아·태평양지역 에너지·화학사업 선도 1997-2008 인도네시아 두마이 윤활기유공장 준공식(2008.6) 인도네시아 두마이 윤활기유공장 전경173 SK INNOVATION 60YEARS HISTORY BOOK 를 완성해 나갔다. 마침내 2005년 11월, 최태원 회장은 APEC 정상회의 참석차 방한한 인도네시 아 유도요노 대통령을 직접 만나 두마이 프로젝트를 직접 제안했다. 유도요노 대통령이 해외 투자 자 유치에 적극성을 보이면서 마침내 두마이 프로젝트의 가능성이 열리기 시작했다. 이를 계기로 SK주식회사는 2006년 1월 페르타미나 경영진과 타당성 조사 결과를 토대로 합작 사 설립을 위한 세부 내용 조율에 들어갔다. SK주식회사는 이 과정에서 보통 반년 이상이 걸리는 사업타당성 검토 작업을 2개월 만에 완수하는 방식으로 페르타미나 경영층의 신뢰를 얻었다. 결 자해지에 따라 화룡점정의 마지막 방점을 최태원 회장이 찍었다. 2006년 12월 대통령의 인도네 시아 순방길에 경제사절단으로 동행해 다시 한번 페르타미나 경영진과 만났다. 최태원 회장의 노력으로 마침내 파트라SK(Patra SK)가 탄생했다. 2007년 4월 23일, 합작사 협 약 체결과 함께 SK주식회사는 페르타미나사와 현지공장 건설 및 생산업무를 담당할 합작법인을 자카르타에 설립했다. 현지법인은 SK주식회사와 페르타미나가 각각 65 대 35의 지분구조로 설 립됐다. 두마이 윤활기유공장은 2006년 11월 착공, 2008년 6월부터 상업생산에 돌입했다. 두마 이 기유공장 준공으로 SK주식회사는 국내 정유회사 중 최초로 동남아시아에 생산설비를 확보하 는 성과를 거뒀으며, 자원 대국이자 지리적 이점이 뛰어난 인도네시아에 거점을 확보할 수 있었다. 또 글로벌 공급망 강화로 미국 및 유럽시장 확대에도 한층 탄력을 받았다. 생산능력도 크게 늘어났다. 울산CLX 제1·2기유공장(2만 4,800배럴)에 신규 두마이 기유공장 (7,500배럴)을 합쳐 총 3만 2,300배럴을 확보함으로써 고급 윤활기유시장에서 선두를 확실히 굳 힐 수 있었다. 더욱이 SK주식회사는 두마이 기유공장 준공을 계기로 싱가포르 물류기지, 베트남 자원개발, 인도네시아 기유공장을 잇는 동남아시아 트라이앵글을 강화해 나갈 수 있었다. 울산 제3윤활기유공장 프로젝트 역시 글로벌 파트너링의 모범 사례였다. SK주식회사는 일본 시기내용 2002 제2윤활기유공장 건설 추진 2004.9 제2윤활기유공장 준공 2005.11 최태원 회장 APEC 정상회의서 인도네시아 대통령 면담(두마이 프로젝트 제안) 2006.1 페르타미나와 타당성조사 결과 토대로 합작 조율 2006.12 최태원 회장 대통령 인도네시아 순방길에 페르타미나와 합작사 설립 합의 2007.4.23 파트라SK(Patra SK) 합작사 설립 2008.6 인도네시아 두마이 윤활기유공장 상업생산 돌입 2010 일본 JX NOE 합작, 울산 제3윤활기유공장 프로젝트 추진 2010.9제3윤활기유공장 착공 2012.4 제3윤활기유공장 준공 고급 윤활기유 글로벌 시장 개발 과정 174 CHAPTER 2. UNIVERSAL SK 이름으로 아시아·태평양지역 에너지·화학사업 선도 1997-2008 JX NOE와 합작으로 울산CLX에 제3윤활기유공장 건설을 추진했다. 3,100억 원을 투자해 2010년 9월부터 그룹Ⅲ 기유공장(하루 2만 6,000배럴)과 HBO공장(하루 6,000배럴) 건설에 착수했다. 연인원 32만 6,000명을 동원, 19개월 만인 2012년 4월 준공했다. 이 공장은 SK주식회사의 독자기술로 건설했다. 주요 공정 뿐만 아니라, 장거리 배관 및 동력설 비, 유틸리티 및 연계공정 최적화까지 직접 설계하고 설치작업을 진행했다. 울산CLX의 제1윤활기 유공장과 제2윤활기유공장, 인도네시아 두마이 윤활기유공장에 이어 일본 최고의 정유사와 합작 으로 다시 울산CLX에 제3윤활기유공장을 완공함으로써 SK주식회사는 명실상부한 글로벌 최고 윤활유 전문기업의 위상을 확보했다. 036. 한일 최대 에너지기업 간 전략적 제휴 2011년 3월 11일, 일본 도호쿠(東北) 지방에서 일본 관측 사상 최대인 리히터 규모 9.0의 대지진 이 발생했다. 이후 초대형 쓰나미가 센다이시 등 해변 도시들을 덮치면서 인명 피해가 속출했고, 도쿄를 비롯한 수도권 일대까지 건물 붕괴와 대형화재가 잇따랐다. 특히 지상으로 밀려든 대규모 쓰나미로 후쿠시마 원전의 전원 공급이 중단되면서 방사능이 누출되는 대형 사고까지 발생했다. 1986년 발생한 구소련의 체르노빌 원자력 사고 이후 인류 역사상 자연재해에 따른 재산 피해액이 가장 큰 참사로 기록되는 등 일본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심각한 우려와 후유증을 남겼다. 동일본 대지진 발생 나흘째인 2011년 3월 14일, 구자영 SK이노베이션 사장 앞으로 한 통의 편 지가 날아왔다. 일본 최대 정유업체인 JX NOE의 기무라 야쓰시 사장이 보낸 것이었다. 그의 메시 지는 짧지만 인상적이었다. “아시다시피 강력한 지진이 일본 동북부를 완전히 파괴했습니다. 지진 발생 사흘이 지나면서 온 나라가 복구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일본 최대 정유업체인 우리 회사는 복구를 위해 안정적 으로 석유를 공급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설비가 망가졌으니 우리가 책임을 다하려 면 외부의 지원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부탁할 때 도와준다면 정말 고마울 것입니다.” SK이노베이션은 이웃의 재난을 외면하지 않았다. 일본의 아픔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기 위해 지 원에 총력을 기울였다. 당시 JX NOE도 동일본 대지진으로 큰 피해를 입어 일본 전체 정유설비의 31%나 가동이 중단되면서 석유제품 수급에 어려움을 겪었다. 이때 SK에너지는 원유탱크의 저장여력이 부족한 가운데서도 일본 업체 대신 원유를 매입했고, 제품 수출계약이 완료된 상태임에도 석유제품을 일본에 우선 공급했다. JX에너지에 대해서도 중 동원유 200만 배럴(약 2억 달러 상당)을 대신 구매해 일본 하루 소비량의 25%에 해당하는 휘발 유 26만 배럴을 공급했다. JX NOE에서는 SK에너지의 실질적인 지원과 협력에 대해 감사의 서신 을 보내오기도 했다. 사실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과 마찬가지로 JX NOE와의 인연도 그리 오래되175 SK INNOVATION 60YEARS HISTORY BOOK 지 않았다. 1888년 설립되어 1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JX NOE는 석유제품 정제 및 가스 수 입판매, 전력, 발전 등 종합에너지사업을 영위하고 있던 일본 최대의 정유사였다. 그동안 석유사업 은 에너지안보 논리로 인해 국가 간 제휴도 쉽지 않았다. 그러나 글로벌리제이션 시대, SK주식회사는 2000년대 중반 이후 국내외 파트너와의 전략적 제휴를 통해 석유산업시장에서의 기업가치를 제고하고 경쟁력 강화를 도모했다. 인도네시아 페 르타미나에 이어 일본 JX NOE를 찾아갔고, 2007년 양사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면서 아시아 지역에서의 공동 사업제휴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합의에 따라 양사는 해외자원개발, 석유수급, 석유화학, 윤활유, 해외사업 등 주요 5개 분야에 걸쳐 사업제휴를 하기로 했다. 유전 탐사와 개발 등을 위해 기술교류회 운영 등 상시적인 정보교 환체제를 구축하기로 했으며, 석유화학부문은 중국 진출 추진에 있어 석유화학 생산설비 등을 공 동으로 건설하기로 했다. 양사의 사업제휴를 공고히 하기 위해 각사 전체 주식의 1% 내에서 지분 을 매입하는 자본제휴에도 합의했다. 국적이 다른 석유기업이 사업 전반에 걸쳐 전략적 제휴를 체 결한 것은 당시로서는 전례를 찾기 힘든 사건이었다. 특히 동일본 대지진은 양사의 유대관계를 더욱 끈끈하게 다져 주었다. 당시 석유화학 분야는 중 국과 인도 등 신흥시장에서의 의류산업 성장으로 PX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었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국제 금융시장이 얼어붙으면서 투자자금 마련이 쉽지 않아 투자부담을 줄이는 전략으로 합작제휴선을 탐색하던 차에 우호적인 JX NOE와 사업논의가 이뤄졌다. 양사는 상호 기술을 공유해 확대되는 세계시장을 선점해 나가기로 했다. 동일본 대지진 발생 5개월 뒤인 2011년 8월 SK종합화학은 JX NOE와 PX공장 건설 합작투자계약을 체결했다. 양사는 50 대 50으 로 1조 원을 출자해 합작법인을 세우고 울산CLX에 연간 PX 100만 톤, 벤젠 56만 톤 생산 규모의 공장 건설을 추진했다. JX NOE와 두 번째 파트너십은 SK루브리컨츠와 이뤄졌다. 2011년 3,500억 원 규모의 제3윤활 기유공장을 울산CLX에 건설하기로 하는 투자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JX NOE는 동일본 대 지진 이후 해외공장 건설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으며, 한국이 법인세가 낮은 데다 원화 약세로 사업환경도 양호해 수출거점으로 적합한 것으로 판단하고 합작투자에 참여한 것이었다. 구분내용 2007 일본 JX NOE 전략적 제휴(해외자원개발, 석유수급, 석유화학, 윤활유, 해외사업 등) 상호 주식 1% 매입으로 자본제휴 합의 2011.3.11 동일본 대지진 발생 2011.3.14JX NOE 기무라 야쓰시 사장의 SK 협조 요청, 이후 SK 일본 원유공급에 적극 협력 2011.8 SK종합화학과 PX 합작투자 양해각서 체결(SK루브리컨츠와 제3윤활기유공장 건설) 일본 JX NOE와의 전략적 개발 및 협력Nex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