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revious146 CHAPTER 2. UNIVERSAL SK 이름으로 아시아·태평양지역 에너지·화학사업 선도 1997-2008 10 대한민국 에너지 파워 기틀을 닦다 SK는 석유사업의 맏형 답게 유공에 이어 대한송유관공사 인수 후 경영정상화를 이끌어냄으로써 공 기업 민영화의 성공적 선례를 남겼다. 외자유치가 절실했던 외환위기 직후에는 미국 전력회사인 엔 론으로부터 순수지분 출자 형식으로 3억 달러를 유치해 SK엔론을 설립했다. 이는 국내 최초 지주회 사로서 지역 도시가스 회사들을 잇따라 인수했다. 이후 SK E&S로 개명 후 SK주식회사의 LNG발전 계열사인 케이파워를 인수함으로써 발전사업의 시너지를 키웠다. 147 SK INNOVATION 60YEARS HISTORY BOOK “유공을 정유회사로만 운영할 것이 아니라, 종합에너지회사로 그 방향을 바꾸어야 한다. 정유뿐만 아니라 석탄, 가스, 전기, 태양에너지, 원자력, 에너지축적 배터리 시스템 등도 포함되는데, 우리 는 장기적으로 이러한 모든 사업을 해야 한다.” (최종현 선대회장의 혁신 메시지, 유공 부·과장 간담회, 1982.12.9) “SK가 외자유치를 통한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추진한 합작 가스전문회사 SK엔론 주주 서명식 및 설립 기념식이 1월 13일 오후 6시 쉐라톤워커힐 무궁화홀에서 손길승 회장, SK주식회사 최태원 회장, 엔론사 테리쏜 수석부사장을 비롯, 박태영 산업자원부 장관, 김영대 가스안전공사 사장 등 12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SK는 지난해 1월부터 가스 분야의 합작을 통한 외자유치를 위 해 세계 유수의 전력·가스회사와 지속적으로 접촉했으며, 10월부터는 미국의 엔론사와 투자시기 및 투자금액 등의 협상을 진행해 금번 계약을 체결하기에 이르렀다.” (사보 <SK>, 1999.1) “케이파워(주)가 9월 7일 광양LNG복합화력발전소 1·2호기의 건설을 성공리에 마무리하고, 이를 기념하기 위한 종합준공식을 워커힐 비스타홀에서 개최했다. 전남 광양시 국가산업단지 내에 지 어진 광양LNG복합화력발전소에는 약 6,800억 원이 투자됐으며, 설비규모는 1.074MW이다. 케 이파워는 SK주식회사(지분비율 65%)와 영국의 BP(35%)가 합작투자한 발전회사로, 인도네시 아 가스전인 탕구로부터 LNG를 직도입해 전기를 생산한 후 전력거래소를 통해 생산된 전기를 판 매하는 국내 최초의 상업발전소이다.” (사보 <SK>, 2006.9) 최종현 선대회장의 평생 꿈이었던 종합에너지로의 혁신은 2006년 케이파워의 광양천연가스 발전소가 본격적인 상업운전에 돌입하면서 비로소 제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원자력을 제외하고 그가 구상했던 혁신 설계도대로 24년 만에 이룩한 위대한 업적이었다. 유공가스와 도시가스사업 을 통한 LPG·LNG 가스사업, 석유·석탄개발사업, 전기차 배터리 개발에 이어 2006년부터 케이파 워가 LNG를 생산·판매하면서 더불어 전기도 생산해냈고, SK E&S(구 SK엔론)의 LNG 기반 에너지 사업은 태양광·풍력 등의 재생에너지를 넘어 수소에너지의 신에너지 분야까지 확장됐다. 028. 국가 에너지 동맥, 대한송유관공사 민영화 “공정거래위원회는 SK(주)의 대한송유관공사 주식 취득과 임원 겸임을 내용으로 하는 기업결 합을 승인했다고 4일 밝혔다. 이에 따라 대한송유관공사는 SK그룹의 계열사로 새로 편입됐다. 148 CHAPTER 2. UNIVERSAL SK 이름으로 아시아·태평양지역 에너지·화학사업 선도 1997-2008 SK(주)는 작년 11월 정부가 매각한 대한송유관공사 지분(36.71%)중 17.74%를 취득, 지분율을 34.04%로 끌어올린 뒤 올 1월 열린 송유관공사 주주총회 및 이사회에서 대표이사를 선임하는 등 경영권을 확보했다.” (<한국경제신문>, 2001.6.4) SK주식회사의 대한송유관공사 인수는 ‘한국의 힘-SK’의 저력을 보여주는 의미 있는 사건이었 다. SK주식회사는 석유사업의 맏형으로서 유공에 이어 대한송유관공사 역시 경영정상화를 이끌 어내면서 국가 공기업 민영화의 성공적 선례를 남겼다. 송유관이란 석유를 안정적이면서 경제적으로 수송하기 위해 지하에 매설한 관로(管路)를 의 미한다. SK주식회사가 대한송유관공사를 인수하기까지 국내에는 SK 자체 송유관, 미군의 종단 송유관, 대한송유관공사의 남북송유관 등 3개의 송유관이 있었다. 이중 미군의 종단송유관이 가 장 오랜 전통을 자랑한다. 1970년에 주한미국이 건설한 포항-의정부 구간의 한국종단송유관(TKP, Trans Korea Pipeline)으로, 내륙지역 경질유 수급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주요 수송수단 으로서 총 길이 452km, 저유능력은 약 110만 배럴에 이르며, 일일 송유능력은 3만 7,200배럴 규 모였다. SK 자체 송유관은 1972년 유공이 건설했다. 유공은 1972년 일일 10만 배럴의 송유능력을 갖춘 울산-대구 구간 103km 장거리 송유관을 완공하고 석유수송을 담당하기 시작했다. 이후 서울을 비롯한 전국 주요 거점에 저유소를 연이어 개소함으로써 효율적인 석유 공급체계를 갖추었다. 대한송유관공사의 남북송유관은 최장 길이를 자랑한다. 대한송유관공사는 온산에서 서울을 연 결하는 900km 남북송유관(SNP, South North Pipeline)의 건설과 운영을 위해 1990년 설립됐다. 송유관의 공공성을 고려해 정부가 지분 51%를 확보하고, 5개 정유사와 2개 항공사가 49%를 출 자해 설립된 공기업이었다. SNP는 1992년 착공, 1997년 완공됐다. 유공은 자체 송유관 운영에 이 어 미군의 종단송유관을 인수한다. 1990년부터 2년여에 걸쳐 진행된 한미 양국 간 한국종단송유 관 양도·인수 협상이 완료되어 시설의 소유권이 한국정부로 이양됨에 따라 유공은 한국종단송유 관 관리기관인 육군 군수사와 한국종단송유관 보관위탁 계약을 체결했다. 이로써 종단송유관의 운영권을 획득한 유공은 1992년 6월부터 직접 운영에 들어갔다. 송유관 운영 구간이 기존 103km에서 555km로 3배 이상 늘어났다. 한국종단송유관의 효율적 운영을 통 해 주한미군에 유류를 안정적으로 공급하고 한미연합 작전태세 유지에 기여한 공로로 1996년 9 월 국방부장관이 수여하는 감사장을 수상하기도 했다. 송유관 운영구간 확장과 함께 국내 최장 구간을 자랑하는 남북송유관과의 연결도 이뤄졌다. 1996년 11월 대한송유관공사가 관리운영하고 있던 신규 남북송유관을 통해 서울물류센터까지 송 유가 개시되면서 동절기 수도권 경유수급이 원활해졌다. 또 이를 통해 하절기 인천물류센터에서 이관하던 춘천 수요량도 서울에서 직접 연결이 가능해149 SK INNOVATION 60YEARS HISTORY BOOK 졌다. 한국종단송유관 운영에다 신규 남북송유관을 서울물류센터까지 연결함으로써 유공은 물류 네트워크를 크게 확대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남북송유관 운영주체인 대한송유관공사는 송유관 건 설공사 완료 직후 민영화 운명을 맞이한다. 건설 과정에서 송유관 건설공사를 차입 위주로 진행하 면서 적자가 누적됐고, 건설공사를 완료한 1997년 외환위기가 발생하면서 정부의 공공부문 구조 조정의 일환으로 강도 높은 경영혁신과 함께 민영화 방침이 결정됐다. 2001년 1월 정부가 대한송유관공사의 보유주식을 기존 주주들의 지분에 비례해 분할하면서 SK 주식회사는 지분 34%를 확보해 최대주주에 올랐다. 그러나 국가 에너지 대동맥의 전체 운영의 감 격도 잠시, 대한송유관공사의 계열 편입까지는 상당한 진통이 따랐다. 대한송유관공사 경영권 문제를 둘러싼 정유사들 간 분쟁이 있었다. SK주식회사가 공정위에 기 업결합신고를 하자 경쟁사는 공정거래를 저해하는 기업결합이라며 이의를 제기했다. SK주식회사 가 대주주임을 이용해 지배적 권한을 행사함으로써 공정거래를 제한할 소지가 있다며 반대 입장 을 표명한 것이었다. 대한송유관공사의 정상화 과정도 쉽지 않았다. SK주식회사가 대한송유관공 사의 경영정상화를 위해 대주주 책임경영을 추진하려 했으나, 경쟁사가 제지하고 나섰다. 경쟁사 는 전문경영인을 통한 공동책임 형태의 운영방안을 요구했다. SK주식회사가 대한송유관공사의 경영권을 갖게 되면 송유물량 배정에서 타 회사들이 제한을 받을 수 있으며, 품질, 물량, 가격 등에 대한 정보도 노출될 우려가 있다는 게 그들의 논리였다. SK주식회사는 경쟁사들의 논리에 맞서 적극적으로 소명했다. 송유관 수송물량은 사전계약에 따라 이루어지고 있으며, 석유수송 규정에 따라 탱크와 우선순위 배정이 정해지기 때문에 독단적 시기내용 1970미군 종단송유관 건설(포항-의정부 구간, 452km) 1972 유공 자체 송유관 건설(울산-대구 구간, 103km) 1990 대한송유관공사 설립(온산-서울 구간 남북송유관 건설 추진, 900km) 1992 남북송유관 착공 1992.6 유공 미군 종단송유관 운영권 획득(송유관 총 555km 확보) 1995남북송유관 완공 1996.11 유공 남북송유관과 서울물류센터 연결 물류네트워크 확대 1998 대한송유관공사 적자 누적, 민영화 결정 2001.1 SK주식회사 대한송유관공사 지분 34% 확보로 최대주주 등극 (경쟁 정유사들 SK의 대한송유관공사 기업결합 반대) 2001.6 공정위 SK주식회사 기업결합 승인, 대한송유관공사 SK 계열사 편입 (이후 구조조정 등 자구노력으로 대한송유관공사 정상화 성공) 2009 약 1,600억 원의 이익잉여금을 보유한 재무구조 탄탄한 기업으로 변신 송유관의 역사와 대한송유관공사 인수 과정150 CHAPTER 2. UNIVERSAL SK 이름으로 아시아·태평양지역 에너지·화학사업 선도 1997-2008 인 경영이 불가능한 점을 들어 설득했다. 또 유통물량 정보는 송유계획서를 통해 모두 공개되고 있을뿐더러 품질과 관련된 비밀정보 역시 송유관을 운영한다고 알 수 있는 내용이 아님을 분명히 강조했다. 양쪽의 소명을 청취한 정부는 결국 SK주식회사의 손을 들어주었다. 경쟁사가 SK주식회 사의 대한송유관공사 인수에 대해 공정위에 재심사를 요청했으나, 공정위는 상호협의 하에 송유 관 운영상의 보완대책을 강구하도록 시정조치를 지시하면서 SK주식회사의 기업결합을 허용했다. 이로써 SK주식회사는 대한송유관공사의 대주주로서 남북송유관의 관리운영을 맡게 됐고, 대한 민국 전체 에너지 대동맥을 경영하게 되면서 ‘한국의 힘-SK’를 다시 한번 입증할 수 있었다. 송유 관 운영구간도 기존 557km에서 무려 2배나 늘어나 1,457km에 이르렀다. 민영화 이후 SK를 만나 대한송유관공사는 구조조정 등 자구노력으로 연속 흑자를 달성하며 단 계적으로 회계상의 누적결손금을 모두 해소했다. 2009년에 이르러서는 약 1,600억 원의 이익잉 여금을 보유하는 등 재무구조가 건강한 회사로 거듭났다. 029. 케이파워 SK전력, 종합에너지 포트폴리오 확장 최종현 선대회장의 치밀한 혁신 설계도에도 불구하고 종합에너지로 가는 길은 쉽게 열리지 않았 다. 1982년부터 본격적인 혁신에 나선 결과, 정유사업을 발판으로 LPG·LNG사업에 진출하고 석 탄·석유개발사업에서도 가시적인 성과를 얻었으며, 무엇보다 R&D에 역량을 집중해 전기차 배터 리 분야에도 한 가닥 희망이 열리고 있었다. 그러나 종합에너지로 가는 길에서 발전사업은 커다란 암초였다. 당시 국내 전력사업은 공기업 한국전력이 독점하던 국가 기간산업이었다. 경제개발 시대 산업발전의 절대적인 ‘쌀’이었던 전기 의 생산·판매는 오직 국가만이 소유할 수 있었다. 그래야만 효율적인 경제개발이 가능하다는 논리 가 횡행하던 시절이었다. 그러던 중 유공이 종합에너지 혁신에 나선 지 10년 만에 세상이 변하고 있었다. 개방화, 세계화 시대 도래를 앞두고 민자발전사업에 서광이 비치기 시작했다. 1993년 정부는 장기전력수급계획 에서 발전부문의 민간 참여를 공식적으로 검토하기 시작했으며, 1995년에는 민자발전사업 기본 계획을 수립하기에 이르렀다. 유공은 이 같은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민자발전사업 계획의 내용은 ‘석탄화력 1기, LNG 발전 2기’의 민간사업자 허용이었다. 종합에너지 혁신 10년 만에 비로소 발전사업 진출의 부품 희 망에 들뜬 유공은 종합에너지 청사진을 마련했다. 석유, 석탄, LPG, LNG에 이어 ‘LNG+전력’ 확보 로 종합에너지 혁신을 완성한다는 전략이었다. 유공은 정부가 제시한 발전사업 중에서 그동안 도 시가스 사업으로 축적한 경험을 바탕으로 LNG를 선택했고, 사업부지로는 대구지역을 낙점했다. 151 SK INNOVATION 60YEARS HISTORY BOOK “총사업비 5,000억 원 규모의 대구 민자발전 사업자로 SK주식회사가 주간사업체로 참여하는 컨 소시엄인 대구전력(주)이 선정됐다. 제2차 민자발전사업평가위원회가 12일 ‘대구 민자발전사업 참여를 신청한 4개 업체를 대상으로 심사를 벌인 결과 재무상태와 건설 및 운영계획, 입지, 환경 등 3개 분야의 종합평점이 가장 높은 대구전력(주)을 사업자로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대구전력 (주)에는 SK주식회사와 함께 SK텔레콤, 쌍용건설, 쌍용자동차 등이 참여하고 있다. 대구전력(주) 은 오는 2004년까지 450MW 규모의 LNG복합화력발전소 2기를 차례로 건설해 자가수요를 제 외한 전력생산량을 한국전력에 판매하게 된다.” (<연합뉴스>, 1998.1.12.) 1997년 12월 대구전력을 설립한 SK주식회사가 강력한 라이벌이었던 동부건설·한국중공업 컨 소시엄인 동한전력(주)을 물리치고 1998년 3월 대구 민자발전사업 허가권을 취득한 것이었다. 그 러나 SK주식회사의 부품 희망은 IMF 외환위기가 또 다시 발목을 잡았다. 파트너인 쌍용그룹이 심 각한 경영위기를 맞았으며, SK도 구조조정의 소용돌이로 휘말리고 있었다. 이는 같은 시기 사업권 을 획득했던 LG, 현대, 포스코의 사정도 마찬가지였다. 국가적 경제위기를 맞아 계속 사업을 지연 시키고 있었다. 그럼에도 SK주식회사는 끝까지 전력사업을 포기하지 않았다. 꺼진 불씨가 되살아 난 건 2001년 즈음이었다. 대구 발전사업 중단 이후 꾸준히 재기를 모색하며 ‘필승 전략’ 마련에 몰두했다. 그렇게 해서 전력사업 재추진 전략이 새롭게 마련됐다. 3가지 필승 전략 중 첫 번째 전략은 사업지역의 변경이었다. 후보지 정밀분석 결과 SK주식회사 는 전남 광양을 최적의 사업지로 주목했다. 포스코 광양제철소가 LNG 인수기지를 추진 중이었고, 이곳 바로 옆에 발전소를 건설하면 LNG 인수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두 번째 전략은 LNG 직도입 추진이었다. SK주식회사는 기존의 관행인 한전 전력수급계약인 PPA(Power Purchase Agreement)로는 LNG 원가경쟁력을 확보할 수 없다고 판단했고, 변동비반 영 시장인 CBP(Cost Based Pool)에서 원가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LNG 직도입이 선행돼야 한다고 확신했다. 세 번째 전략은 효과적인 투자자금의 확보였다. SK주식회사는 외자유치를 위해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 물색에 직접 나섰고, 자금 확보 과정에서는 프로젝트 파이낸싱도 적극적으 로 활용하기로 했다. 치밀한 전략에 따라 SK주식회사는 2001년 11월 산업자원부로부터 발전사업 변경 허가를 취득했다. 사업부지를 대구에서 광양으로 옮긴다는 내용이었다. 이때 발전사업자의 사명도 변경했다. 대구전력에서 SK전력으로 바꾸었다. 사업부지의 광양 이전과 함께 SK주식회사는 곧바로 포스코와의 협력을 시도했다. 포스코 LNG 터미널과 SK LNG발전소 간 시너지 창출이라는 양측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면서 협상은 급물 살을 탔고, 2002년 7월 포스코와 기본합의서를 체결하기에 이르렀다. 그 다음 수순은 LNG 직도입 추진이었다. 가장 경제성 있는 LNG 도입선 탐색 과정에서 SK주식 회사는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사냥하는 성과를 거뒀다. 인도네시아 탕구 가스전이 직도입의 최152 CHAPTER 2. UNIVERSAL SK 이름으로 아시아·태평양지역 에너지·화학사업 선도 1997-2008 적지로 부각되는 가운데, 마침 그곳 사업권의 소유주가 세계 3대 석유가스회사인 영국의 BP였다. BP는 SK주식회사의 전략을 매력적으로 받아들였다. LNG 직도입을 위해 한국에서 처음으로 찾 아온 손님의 도전정신을 높이 평가했다. 그 결과 LNG 직도입과 외자유치가 거의 동시에 이뤄졌다. 2003년 8월 BP 탕구와 LNG 주요 도입조건에 관한 기본합의서를 체결했으며, 이어서 4개월 뒤인 2003년 12월 BP와 별도로 합작 본계약도 체결했다. 지분구조는 SK 65%, BP 35% 수준이었다. “SK주식회사는 SK전력을 케이파워로 사명 변경을 하고 전력사업 추진을 위한 BP와의 합작 법인 으로 공식 출범했다고 15일 밝혔다. SK전력은 이날 이사회 및 임시주주총회를 열어 케이파워주 식회사(K-Power Co. Ltd.)로 사명 변경을 결의했다. 이와 함께 케이파워(주)는 세계적인 에너지 기업인 BP와 SK가 합작해 광양 LNG복합화력발전소 사업을 추진하는 법인으로 출범하게 됐다. 이 날 행사에는 케이파워(주) 박영덕 대표이사 등 케이파워(주) 이사진 및 SK(주) CFO 유정준 전 무, E&M 부문장 김명곤 전무 등 SK(주) 관계자와 함께 앤퀸 BP부사장 등이 참석했다. 이날 주총 에서 케이파워(주) 박영덕 대표이사는 ‘한국 에너지 사업에서 확인된 SK(주)의 리더쉽과 BP가 보 유한 풍부한 발전소 개발 및 운용 경험이 결합한다면 전력사업에 있어서 시너지를 최대한 창출할 수 있을 것’라고 말했다.” (<이데일리>, 2004.1.15) 시기내용 1997.12 대구전력(주) 설립 1998.3 발전사업 허가 취득(2차: 대구 민자 발전사업) - 1996년에 이미 1차 사업자로 LG, 현대, 포스코가 선정(IMF 외환위기 등으로 지연) 2001.11산업자원부로부터 발전사업 변경 허가 취득(사업부지 대구 → 광양) - 포스코 LNG 터미널과 SK의 LNG 발전소 간의 시너지 창출 기대 2002.7 포스코와 기본합의서 체결: 포스코, SK(주), SK전략(주) 2003.8 BP Tangguh와 LNG 주요 도입조건에 대한 기본합의서(HoA) 체결 2003.9광양복합화력현장 착공 2003.12 EPC 계약 체결(w/DIC) BP와 합작 본 계약 체결: SK(65%), BP(35%) 2004.1 사명 변경 : SK전략(주) → 케이파워(주) 2004.6 O&M 계약 체결(w/GEII) 2004.12 LNG 도입 본계약 체결(BP Tangguh) 2005.7 최초 계통 병입 2005.12 Tangguh로부터 시운전 LNG 1 Cargo 도입(DAWAMARU) 2006.2 광양 LNG 복합화력발전소 Unit 1 COD(상업운전) 개시 전력사업 주요 연혁153 SK INNOVATION 60YEARS HISTORY BOOK 케이파워 출범으로 2003년 9월 착공에 들어간 광양천연가스발전소 건설사업도 순항하기 시 작했다. EPC 계약, O&M 계약에 이어 2004년 8월 LNG 직도입 본계약이 체결됐다. 이를 계기로 케이파워는 프로젝트 파이낸싱을 시도했다. 케이파워의 자금조달에 금융권의 반응은 호의적이었 다. 국내 최초 LNG 직도입 도전과 인도네시아 탕구 가스전과의 저렴한 장기공급계약 체결 성과를 높이 평가했다. 그 결과 기존 관행의 PPA가 없는 상업 프로젝트임에도 산업은행을 비롯한 13개 금융기관과 프 로젝트 파이낸싱에 성공함으로써 국내외 전력시장에서 사업신뢰도를 확보할 수 있었다. 프로젝 트 파이낸싱으로 600억 원을 긴급 수혈하면서 광양천연가스발전소 완공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2005년 7월 최초 계통병입에 이어, 2005년 12월 인도네시아 탕구 가스전으로부터 최초 들여온 LNG로 시운전을 시행했으며, 2006년 12월 광양천연가스발전소가 마침내 본격 상업운전에 돌입 했다. SK주식회사의 종합에너지 혁신 추진 24년 만에 비로소 최종현 선대회장의 숙원이 이루어지 는 순간이었다. 광양천연가스발전소 본격 가동 이후 LNG 직도입, 포스코 파트너십, BP 외자유치 효과 등 3박 자 전략이 위력을 발휘하면서 케이파워의 경영실적은 계속 승승장구했다. 당기순이익이 2008년 1,800억 원, 2009년 2,200억 원에 달해 당기순이익률이 무려 25~40%에 이르렀다. 그 위력을 기반으로 2010년 2월 케이파워는 지분 100% 확보에도 성공했다. 당초 BP는 포스코 를 우선협상자로 확정하고 주식매매계약(SPA)을 위한 양해각서까지 체결했으나 SK주식회사가 우선매수청구권을 행사하면서 지분 전량이 SK주식회사로 넘어왔다. SK주식회사의 미래 안목이 돋보이는 대목이었다. SK주식회사는 이를 예견이라도 한 듯 이미 BP와의 합작 과정에서 우선매 수청구권을 확보해 둔 것이었다. 030. 국내 최초 순수 지주회사, SK엔론 설립 IMF 외환위기 때 SK주식회사의 주요 경영방침은 ‘고객만족경영 실천’, ‘지식경영체제 구축’에 이 어, ‘구조조정의 가속화’였다. 구조조정 전략으로는 ①수익성 없는 사업의 과감한 철수와 ②석유· 가스 등 핵심사업의 선택과 집중이었다. 이와 함께 ③외자유치를 통한 재무구조 개선을 구조조정 의 핵심전략으로 삼았다. 외자유치는 달러에 목말랐던 당시 정부의 최대 관심사이기도 했다. IMF 위기에서 하루라도 빨리 벗어나기 위한 방편으로 구조조정 기업들에게 특히 외자유치를 강조했 다. 이 같은 시국에서 SK엔론 설립은 대내외 관심이 집중되며 대표적인 외자유치 성공사례로 평 가받았다. SK주식회사는 미국 유수의 에너지기업인 엔론으로부터 3억 달러를 유치, SK엔론이라 는 합작회사를 설립함으로써 외자유치 능력을 대내외에 과시했다. SK엔론의 서막은 1997년 12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SK주식회사 부사장이었던 최태원 회장154 CHAPTER 2. UNIVERSAL SK 이름으로 아시아·태평양지역 에너지·화학사업 선도 1997-2008 의 제안으로 G프로젝트라는 TF팀이 구성됐다. G프로젝트는 그룹 내의 도시가스 주식들을 한곳으 로 집중, 외자유치를 달성한다는 목적으로 구성된 프로젝트로, 가스(Gas)의 영문 첫 이니셜을 본 따 만든 프로젝트명이었다. G프로젝트팀은 1998년 1월부터 최태원 회장의 주도로 가스사업 합작을 통한 외자유치를 위해 세계 유수의 전력·가스회사와 지속적으로 접촉했고, 이 같은 사실을 1998년 5월 7일 SK 구조조정 추진본부가 인정했다. 구조조정추진본부는 그룹의 구조조정 실적과 계획을 설명하면서 외자유치 계획도 함께 발표했 다. 2~3개 주요 관계회사의 지분 매각을 통해 5억 달러 내외의 외자를 조달하고, 핵심사업에 대해 외국 선진기업으로부터 15억 달러 규모의 투자를 유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1998년 10월 외자유치 대상의 윤곽도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G프로젝트팀은 이 시기 미국 의 엔론사와 투자시기 및 투자금액 등의 협상을 이어 나갔다. 그리고 마침내 1998년 12월 10일 SK 주식회사와 미국 엔론이 총 자산규모 5,000억 원의 합작 가스회사를 설립하기로 합의했다는 기 사를 국내 언론에서 긴급 타전하기 시작했다. “SK는 미국의 전력·가스회사인 엔론으로부터 순수지분 출자형식으로 3억 달러를 유치, 총 자산 5,000억 원 규모의 합작가스회사를 설립키로 하고 이날 엔론과 주식인수계약을 체결했다고 10 일 발표했다. 양사의 합작은 S주식회사가 가스관련 계열사인 SK가스, 대한도시가스, 부산도시가 스, 구미도시가스, 청주도시가스, 포항도시가스 등 6개사의 주식을 출자하고 엔론사는 현금을 출 자하는 형태로 이뤄진다. SK는 ‘합작회사는 앞으로 LNG 인수기지 및 민자가스발전 등 가스·전력 관련 사업을 활발하게 펼칠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경제신문>, 1998.12.11) 1999년 1월 13일, 가스전문회사 SK엔론의 주주 서명식 및 설립기념식이 열렸다. 외자유치와 함 께 SK엔론의 설립이 갖는 또 다른 의미는 우리나라 최초의 지주회사 탄생이었다. 1999년 4월 정 부는 관련법을 개정, 총 자산 중 보유 자회사의 지분가치가 50%를 넘을 경우 지주회사 전환 신 청을 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이로 인해 SK엔론은 지주회사 요건을 갖춘 기업으로 주목을 받았다. 1999년 11월 18일 공정거래위원회는 SK엔론에 대해 지주회사의 까다로운 법적 요건을 갖춘 실질 적인 지주회사라고 발표하기도 했다. “올해 4월 정부가 지주회사 설립을 허용한 이후 처음으로 실질적인 지주회사가 탄생했다. 18일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올 1월 SK그룹과 미국계 엔론사가 공동 설립한 SK엔론이 법적인 지주 회사 요건을 갖춘 것으로 파악됐다. 이 회사는 설립 당시에는 총자산 5,000억 원 중 자회사 지 분 비중이 50% 미만이었으나, 이후 SK가스 등 6개 계열사의 지분을 늘려 50%를 넘어섬으로155 SK INNOVATION 60YEARS HISTORY BOOK 써 요건을 충족했다. SK엔론은 SK가 미국의 에너지 전문그룹인 엔론사로부터 외자를 유치하면 서 설립한 회사로, 양사의 합작 및 SK의 에너지 자회사를 관리하는 등 사실상 지주회사 역할을 해왔다.” (<동아일보>, 1999.11.19) 그러나 SK엔론이 공식적으로 지주회사의 지위를 확정 지은 시점은 2000년 5월이었다. 비록 관 련 요건을 갖췄지만, 신설 회사가 아닌 기존 업체였기 때문에 1999년의 재무제표가 나오는 2000 년 3월 이후에야 지주회사 설립 신청이 가능했다. 이에 SK엔론은 자회사 지분 비중 요건을 갖추고 경영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한 부채비율 및 상호 지급보증 해소 요건 등도 충족했고, 그 결과 2000 년 5월 20일 공정거래위원회는 SK엔론의 국내 최초 지주회사 획득을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SK엔론은 설립 이후 전남도시가스, 강원도시가스, 익산도시가스, 충남도시가스 등을 인수하면 서 산하 계열사가 10개사로 늘어났다. 2005년 10월 호주 투자회사인 맥쿼리가 새로운 파트너로 참여하면서 SK E&S로 사명을 변경했으며, 2011년 8월에는 케이파워를 합병했다. 이로써 SK E&S 는 도시가스 사업에서 출발해 전력, 집단에너지, 글로벌 LNG 사업까지 영역을 확장함으로써 글로 벌 가스·전력회사 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 “SK E&S가 SK주식회사의 발전 계열사인 케이파워와 합병하며 새로운 발전 사업의 시대를 열었 다. 두 회사의 합병은 전력사업에 대한 그룹 내 중요성이 커짐에 따라, 분산되어 있던 역량과 노하 우를 하나로 모아 시너지를 높이는 계기가 됐다. 이로써 SK E&S는 우리 그룹이 추진 중인 LNG 수직계열화를 주도하여 가스와 발전 중심의 진정한 글로벌 종합에너지회사로 나아갈 계획이다. 국내 최초의 민간 상업발전회사인 케이파워는 현재 전남 광양에서 국내 전체 발전설비 용량의 약 2%에 달하는 LNG복합화력발전소를 운영하고 있다. 또한 케이파워는 국내에서 가장 처음으로 LNG를 직도입한 발전사업자이기도 하다. 이날 최재원 수석부회장은 축사를 통해 ‘새롭게 하나 된 SK E&S는 가스전 탐사부터 생산, 트레이딩, 발전, 집단에너지 공급에 이르는 전 과정에 걸쳐 LNG 수직계열화를 주도해 나갈 것이며, 또한, 우리의 오랜 숙원사업인 LNG 도매사업 진출 역시 꿈이 아닌 현실로 만들어 갈 것’이라고 강조하고, ‘서로의 성공 경험을 나누고, 미래를 향한 도전 정신을 공유하면서 사람과 문화가 강한 회사를 만들어줄 것’을 당부했다.” (사보 <SK>, 2011.8)Nex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