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revious126 CHAPTER 2. UNIVERSAL SK 이름으로 아시아·태평양지역 에너지·화학사업 선도 1997-2008 치 컨소시엄을 사옥 매각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하고 협상을 진행해 계약을 체결했다. 사옥을 팔 경우 곧바로 재임대해 사용하는 ‘세일 앤 리스 백(Sale and Lease back)’ 방식으로 계약해 사옥을 매각한 뒤에는 5년 동안 그대로 건물을 임차해 사용했다. 매각 5년 후 시장가격으로 건물을 되살 수 있는 우선매수 선택권을 확보한 덕에, 2011년 2월 뱅 크오브아메리카(BOA) 메릴린치로부터 사옥을 다시 매입했다. 하지만 대체투자 펀드를 통해 인수 하다 보니 반쪽짜리 부동산 명의라는 아쉬움이 있었다. SK빌딩은 최종현 선대회장이 21세기 세계 일류기업 도약의 전진기지를 염두에 두고 설계했던 만큼 SK로서는 상징성이 높은 건물이었다. 결 국 2021년 6월, SK는 16년 만에 SK리츠를 통해 부동산 명의를 완전 소유하는 데 성공했다. 022. 운영 노하우를 상품으로, 무형자산 혁명 ‘Deep Change or Slow Death’을 언급하며 최태원 회장이 SK주식회사에 요구했던 첫 번째 혁신 과제는 기존 사업 및 신규 사업의 핵심역량 강화였다. 특히 그동안 축적된 각종 노하우 등 무형자 산을 신규 사업화하는 데 역량을 집중할 것을 당부했다. SK주식회사의 무형자산 상품화 혁신은 1998년 초 O&M사업팀을 출범시키면서 첫발을 내디뎠다. SK주식회사는 1964년 국내 최초로 정 유공장을 가동한 이래 단일 규모로 국내 최대인 울산CLX를 기반으로 정유·석유화학공장 전 분야 에서 끊임없는 연구개발을 통해 다양한 기술과 노하우를 축적해왔다. 이 같은 토대 위에서 기술 의 전문인력 그리고 광범위한 데이터베이스 및 시스템을 기반으로 산업현장에서 발생되는 다양 한 요구를 해결하고, 국내 정유·석유화학 업계의 기술력 성장을 통한 국가 경쟁력 제고에 일조하 기 위해 기술사업을 추진한 것이었다. 최초의 성과는 1998년 말 대만 포모사의 정유공장 신설 사업이었다. 대만 굴지의 그룹 포모사 가 공장 운전 기술을 높이 평가하고 건설 규모 110억 달러에 달하는 유화공단 건설의 일정 부분 을 SK주식회사에 맡긴 것이었다. SK주식회사는 프로젝트 관리·설계·운전·정비 관련 자문을 진행 했다. 대만 포모사에 이어 아프리카 가나 국영석유회사 TOR와도 기술지원 계약을 체결하고 기 존 공정 진단 및 신규 공정 시운전 지원 등의 용역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가나 프로젝트의 성공 적 수행으로 신뢰를 얻은 SK주식회사는 2000년과 2001년 두 차례에 걸쳐 중질유 접촉분해시설 (RFCC)의 시운전을 맡았고, 신규 RFCC 실험설비 공급 및 설치용역 수주에도 성공했다. 그 외 말 레이시아, 쿠웨이트 등지에서 공장 시운전, 현장교육, 정비기술 및 시스템 구축 서비스 등도 성공 적으로 수행했다. SK주식회사의 기술수출은 선진국 일본에서도 빛을 발했다. 2001년 4월 자체 개발한 ‘경유 매 연 여과장치’ 기술을 1억 엔에 판매하기로 일본 이멕스(EMAX Japan)와 계약했다. 1991년 국내 최 초로 독자 개발한 경유 매연 여과장치 기술은 일본, 독일 등 기술선진국에서도 상용화하지 못한 127 SK INNOVATION 60YEARS HISTORY BOOK 가나 국영회사 TOR 사장 울산CLX 현장 방문(2002.12) BSR과의 베트남 첫 정유공장 설립 계약 체결식(2009.9.15)128 CHAPTER 2. UNIVERSAL SK 이름으로 아시아·태평양지역 에너지·화학사업 선도 1997-2008 고도의 환경오염방지 기술로 당시까지 특허와 21개의 실용신안을 획득한 특수 촉매기술이었다. 세계적인 기술의 각축장이라고 할 수 있는 중국시장에서도 위험기반검사(RBI, Risk Based Inspection) 기술을 기반으로 기술 서비스 프로젝트를 수주하기도 했다. 공장운영 전반에 걸친 기 술 및 종합 서비스 능력을 평가한 프로젝트를 세계 유수의 업체들과의 경쟁을 통해 수주한 이 같 은 성과는 SK주식회사의 우수한 기술력과 서비스 노하우를 전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됐다. 2000년대 중반 이후에는 중동과 동남아 지역에서 정제시설과 석유화학 플랜트가 활발히 증설되면서 마케팅활동을 통해 해외 기술사업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들을 창출했다. 싱가포르 JAC의 O&M 서비스, 쿠웨이트 아로마틱 플랜트 프로젝트 건설현장 지원, 남미지역 에콰도르 Esmeraldas Refinery의 O&M 서비스 기술제공, 태국 Bangchak PPC의 Reformate Splitter 및 Benzene Removal Unit 시운전 기술지원 등을 현지에서 수행했다. 이 가운데 베트남 BSR의 O&M 프로젝트 수주는 지난 10년간 추진한 무형자산 상품화 혁신의 최대 성과물이었다. 베트남 BSR의 안정적인 운영과 생산성 향상을 위한 O&M 프로젝트 계약을 체결한 것은 2009 년 9월 15일이었다. BSR의 정유공장은 베트남 정부와 국민의 오랜 숙원을 담아 설립된 베트남 역 사상 최초의 정유공장이었다. 그런 만큼 베트남 정부 및 산업계 전체에서 차지하는 위상은 대단했 다. 이런 상징성과 베트남 내의 높은 관심 때문에 입찰 당시 막판까지 말레이시아의 페트로나스와 경합을 벌이면서 계약 일정이 지연되는 등 치열한 수주경쟁이 펼쳐졌다. 2014년 9월까지 5년간 공장 운전, 설비 유지·보수 등 공장운영 전반을 담당하면서 노하우를 베 트남에 전수하게 된 SK에너지는 울산CLX의 석유생산, 생산기술, 생산관리, 설비관리, 안전환경보 건 등 각 분야별 경력 10년 이상을 갖춘 전문가 100여 명을 파견해 성공적으로 시운전을 마무리 했다. 울산CLX의 우수한 역량과 성실하고 차별적인 서비스를 통해 베트남 첫 정유공장인 BSR이 성공적으로 가동됐고, 이는 베트남에서 SK에너지의 이미지와 브랜드 가치 제고로 이어졌다. 시기내용 1998 O&M사업팀 발족 1998 대만 포모사의 정유공장 신설 사업 관리·설계·운전·정비 관련 자문 아프리카 가나 국영석유회사 TOR 기술지원 계약 체결 2000 가나 프로젝트 수행(RFCC 시운전 및 실험설비 공급설치) 2001.4 일본 이멕스에 ‘경유 매연 여과장치’ 일본에 수출 2007~2009 싱가포르 JAC O&M 서비스 쿠웨이트 아로마틱 플랜트 프로젝트 건설현장 지원 남미지역 에콰도르 Esmeraldas Refinery의 O&M 서비스 기술제공 태국 Bangchak PPC의 Reformate Splitter 및 Benzene Removal Unit 시운전 기술지원 등 2009.9.15 베트남 BSR O&M 프로젝트 계약 체결 무형자산 상품화 과정과 주요 실적129 SK INNOVATION 60YEARS HISTORY BOOK SK에너지는 2010년 7월 30일 BSR의 신규 합성수지(PP) 공장에 대한 O&M 서비스 계약을 맺 었다. 베트남에서 1,200만 달러 규모의 석유화학 공장 운영기술 수출에도 성공했다. 베트남 최초 의 정유공장 운영을 안정적으로 완수한 것에 만족한 BSR이 유수의 글로벌 기업들 가운데 SK에너 지를 단독으로 선정해 화학공장의 운영 및 유지보수 서비스를 요청하면서 계약이 성사된 것이었 다. 이후에도 SK에너지는 베트남에서의 성과를 추진력으로 삼아 중동지역에서도 석유화학 플랜 트 O&M 프로젝트를 수주하는 등 기술수출을 계속 이어 나갔다. 023. 재계의 거목 최종현 선대회장 영면 IMF 관리체제의 소용돌이 속에서 온 나라가 신음하던 그 뜨거운 여름, 재계는 물론 나라 전체를 충격에 빠뜨린 슬픈 소식이 전해졌다. SK그룹의 회장이자 전경련 회장이었던 최종현 선대회장의 타계 소식이었다. 1998년 8월 26일 오전 7시 40분, 한국 현대 기업사의 거목이 쓰러졌다. 최종현 선대회장은 서울 광장동 워커힐 자택에서 향년 69세에 지병인 폐암으로 타계했다. 그는 SKMS 실 천과 SUPEX추구를 혁신의 도구로 창안한 유일무이의 사상가이자 혁명가였다. 지방의 조그만 직 물공장에 SKMS 혁신사상을 주입, 일약 폴리에스터 원사생산기업으로 탈바꿈시켰다. 종합섬유기업 도약에 만족하지 않았으며, ‘석유에서 섬유까지 수직계열화’ 비전을 내걸고 유공 을 인수, 종합에너지·화학 기업 성장의 혁신 설계도대로 SK주식회사를 세계 최대 규모의 에너지 기업으로 발돋움시켰다. SUPEX추구의 세 번째 결과물은 정보통신 사업 진출이었다. 3번의 혁신 을 통해 SK주식회사는 ‘한국의 힘-SK’로 성장했으며, 그룹은 한국 5대기업의 반열에 올랐다. 최종현 선대회장은 1997년 6월 초 서울대병원에서 폐암진단을 받았고,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폐전문병원으로 유명한 뉴욕의 메모리얼 슬론 케터링병원에서 폐암수술을 받는다. 초기에 암을 발견한 데다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나 건강을 회복할 것으로 기대했으나 좀처럼 회복되지 않았다. 그 사이 박계희 여사가 먼저 별세해 많은 사람들을 안타깝게 했다. 그는 폐암 수술을 받은 직후라 외부와의 접촉이 차단된 상태였고 부인의 별세 소식마저 전달받지 못하는 불운을 겪었다. 최종현 선대회장은 암과 싸우는 와중에도 SK그룹과 한국경제를 위해 마지막 남은 열정을 불살 랐다. 1997년 7월 4일 퇴원한 최종현 선대회장은 요양 중인 미국에서 그룹의 업무보고를 받고 “경 제가 어려울수록 당초 계획대로 투자사업을 집행하라”고 독려했다. 9월 17일 귀국한 그는 먼저 부인의 묘소를 찾아 애도한 다음, 전경련 정례회의를 주재하는 등 사회활동을 계속했다. IMF 외환위기가 터진 후에는 한국경제의 회생을 위해 많은 일을 했다. 그러 나 이미 진행된 암을 물리치지는 못했다. 타계 직전까지 그는 입원을 권하는 주위의 요청을 모두 물리쳤다. “건강하게 사는 것이 중요하지 결코 오래 사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병원에 갇혀 꼼짝 못하다가 마지막을 맞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130 CHAPTER 2. UNIVERSAL SK 이름으로 아시아·태평양지역 에너지·화학사업 선도 1997-2008 마침내 그가 귀천하자 많은 사람들이 애석해했다.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은 1998년 8월 28일자 중앙일보를 통해 ‘우리 경제 수호신으로 길이 머무소서’라는 제목의 추도문을 발표했다. 1998년 8 월 30일 서울 광장동 워커힐호텔에서 최종현 선대회장의 영결식이 거행됐다. 김대중 대통령이 조 의를 표했으며, 김우중 전경련 회장대행, 도요타 쇼이치로 일본 경단련 명예회장, 노태우 전 대통 령 내외, 방일영 조선일보 고문을 비롯한 각계인사 700여 명이 참석해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영결식이 끝난 뒤 최종현 선대회장의 영정은 SK상사 7층 고인의 집무실과 여의도 전경련 회장 실, 수원 SK케미칼, SKC 공장에 들러 고인이 평소 일하던 사무실과 공장을 돌아보았다. 이어 운구 차는 수원시 평동 고인의 생가를 들렀고 이웃 주민들과 친척·친지들이 참석한 가운데 노제가 치 러졌다. 시기내용 1929.11.21 수원시 평동 태생(4남4녀 중 둘째) 1954미국 위스콘신 대학 화학전공 1959시카고대학원 경제학 석사학위 취득. 박계희 여사와 결혼 1962 선경 합류 1968 원사공장 준공, 국내 최초 폴리에스터 원사 메이커 도약 1973 장학퀴즈 후원, 수원 상공회의소 회장 취임 1974한국고등교육재단 설립 1975제2창업 선언. ‘석유에서 섬유까지’ 수직계열화 천명 1976폴리에스터 필름 및 비디오테이프 개발 1979 SKMS 제정 1980 유공 인수 1982 유공 코끼리축구단 창단 1983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 취임 1987 한국경제연구원장 취임 1991 수직계열화 완성 1993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 취임 1994 정보통신사업 진출 1997 선경그룹에서 SK그룹으로 전환 1998.8.26 별세(향년 69세) 1998.8.30영결식 2010.1.12 고인의 뜻을 기려 ‘은하수장래문화공원’ 준공 최종현 선대회장의 생애131 SK INNOVATION 60YEARS HISTORY BOOK 최종현 선대회장 영결식(1998.8.30)132 CHAPTER 2. UNIVERSAL SK 이름으로 아시아·태평양지역 에너지·화학사업 선도 1997-2008 “서민을 생각해서라도 돈 있는 사람들이 묘지를 너무 호화롭게 쓰면 안 된다.” “땅 덩어리가 좁은 나라에서 죽을 때마다 무덤을 만들면 국토의 효율성이 떨어진다.” “장묘 문화 개선에 사회 지도층 인사들이 솔선수범해야 한다.” “내 시신은 화장하고 무덤을 만들지 말라. 무덤 대신 화장시설을 만들어 사회에 기증하고 장묘 문화 개선에 앞장서 달라.” 그 바쁜 경영활동 중에도 나무를 심고, 인재를 키우는데 열정을 바쳤던 고인의 유해는 유언대로 부인 박계희 여사의 유해와 함께 경기도 고양시 벽제화장터에서 화장되고, 수원 가족묘지에 합장 되어 임시 안치됐다. 최종현 선대회장의 유언과 화장 소식은 당시 사회에 신선한 충격을 던지며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화장을 하는 것을 불효로 여기던 사회 분위기 속에서 사회지도층 인사로는 거의 처음으로 화장을 했기 때문이다. 선친의 ‘아름다운 유언’을 완성하기 위해 최태원 회장은 ‘아름 다운 기부’에 나섰다. 훌륭한 화장시설을 만들어 기증하라는 유언에 따라 최신 시설의 장례문화센 터 건립을 위해 부지확보에 나섰다. 그러나 혐오시설이라는 지역 이기주의에 가로막혀 부지확보가 쉽지 않았다. 다행히 2007년 세종시를 후보지로 선택하고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과 최종 협의 를 마쳤다. 건설청은 SK측의 제안을 받아들여 은하수공원을 조성하고, 여기에 SK가 최고 수준의 화장시설을 지을 수 있도록 부지를 마련해 주었다. 이어서 2010년 1월 12일 충남 연기군 남면 고 정리 426번지에 무색, 무연, 무취의 공원 같은 화장시설이 들어섰다. 최태원 회장은 ‘은하수공원 장례문화센터’ 준공식 연설에서 “정성스럽게 조상을 모시는 소중한 전통을 이어가면서 후손들의 미래가 담긴 자연환경까지 지키고 가꾸는 아름다운 장례문화를 일 궈 나가는 것은 우리 세대의 숙제”라고 강조하면서 “앞으로도 선친의 뜻을 받들어 장묘 문화를 개 선하고 새로운 장사문화를 이끌어가겠다”고 밝혔다. SK 혁신의 아이콘으로 태어나 평생 나무를 키우고 인재를 육성했던 사람. 마침내 한줌의 재가 되어 ‘나무의 숲’으로 돌아갔지만, SK 구성원들은 그의 영전 앞에서 다짐했다. “혁신의 그 길을 계 속 이어 가겠다고, 세계 초일류 기업으로 가는 여정을 멈추지 않겠다고.” 024. 정유사 최초 고객가치 추구 ‘OK캐쉬백’ 기존 사업에서 혁신은 절박함에서 발현된다. 주유소 상표표시제 시행(1992), 주유소 거리제한 철 폐(1993), 유가 자유화 조치(1997) 등 무한경쟁 시대의 도래는 후발주자에게는 기회였지만, 국내 최고 정유회사였던 SK주식회사로서는 한마디로 위기 상황이었다. 위기 극복의 절박한 심정에서 SK주식회사는 주유소 마케팅 혁신과 엔크린·ZIC 등의 혁신제품 을 출시하면서 석유마케팅을 강화했다. 유앤아이카드, 엔크린보너스카드, OK캐쉬백으로 이어지 는 카드마케팅 역시 같은 맥락에서 출발했다. 절박함에서 혁신 아이디어를 발굴하던 중 아무도 가133 SK INNOVATION 60YEARS HISTORY BOOK 지 않는 길,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에 주목했고, SK주식회사가 선택한 카드마케팅이 바로 그들이 그 렇게 찾던 전대미문의 미개척 분야였던 것이다. 최초의 카드마케팅은 1993년 7월 1일, 국내 정유 사로는 처음으로 BC카드와 협약을 체결하고 발행한 유엔아이카드(YU&I CARD)였다. 유앤아이카 드는 기존의 신용카드 기능에 유공 고유의 서비스 및 ID 기능을 추가한 것으로, 유공 주유소는 물 론 BC카드 일반 가맹점에서도 사용이 가능한 범용 제휴카드였다. 유공은 유앤아이카드 회원의 유공 주유소 이용실적에 따라 점수를 부여하는 포인트 서비스제 를 실시, 소정의 기준점수 초과 시 윤활유 교환권, 세차권을 비롯한 각종 서비스와 상품, 경품 등을 제공했다. 이와 함께 카드 회원에게는 각종 할인혜택과 정보 제공, 축전 발송 등의 서비스도 제공 했다. 1993년 발행 이후 22개월 만에 100만 명이 가입해 국내 신용카드 사상 최단기간 100만 회 원 돌파를 달성했다. BC카드의 100만 회원 돌파 소요기간이 7년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신용카드 업계에서 보기 드문 기록이었다. 1차 혁신 성공에도 불구, SK 혁신가들은 이에 만족하지 않았다. 바야흐로 윈도우 운영체제의 등 장으로 인터넷 보급이 급속하게 확산되고 있었다. SK주식회사는 카드마케팅의 경우 새로운 혁신 기능 개발과 탑재에 골몰했고, 한편에서는 은밀하게 인터넷 사업을 준비했다. 1997년 SK상사와 SK유통 등 관계사로부터 인력을 차출해 사업의 방향성을 본격적으로 탐색했다. 먼저 카드마케팅은 엔크린보너스카드로 발전했다. 1997년 1월 발행한 엔크린보너스카드는 주 유소 이용고객을 대상으로 한 정유업계 최초의 멤버십카드였다. 엔크린보너스카드는 신용카드 기능이 있는 유엔아이카드와 달리 정유사와 계열 주유소가 함께 체계적인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 해 주유 고객에게 무료로 발급하는 주유 전용 회원카드였다. 전국 엔크린보너스카드 가맹 주유소 어디서나 주유한 실적이 본사에 전송되면 포인트로 누적되어 다양한 혜택을 누릴 수 있었다. 특히 엔크린보너스카드는 가입비용이 들지 않는 데다가 3회 이상 주유 시 1,000만 원 보장 교 통상해보험에 무료 가입해 주었고, 연간 누적실적에 따라 최고 1억 원 보장 교통상해보험 무료가 입 또는 엔진오일 무료교환권 지급 등의 혜택을 제공해 발행 초기 큰 반향을 일으켰다. 발행 6개 월 만인 1997년 9월 회원수가 100만 명을 돌파했고, 1년 만에 200만 명을 돌파하는 폭발적인 위 력을 발휘했다. SK주식회사는 카드마케팅을 더욱 강화했다. 주유실적에 따른 혜택뿐 아니라 각종 경품행사 실 시, 문화행사 협찬, 여행·레저 이용 시 할인 제공 등 혜택 범위를 다방면으로 확산하면서 공격적인 마케팅을 전개했다. 그 결과 1999년 엔크린보너스카드는 카드 발행 2년여 만에 500만 회원을 돌 파하며 국내 차량운전자들의 가운데 절반가량을 확보했다. 이는 카드사를 포함해 국내 업체 중 최 단기간 내에 최대 회원수를 확보하는 대기록을 수립한 것으로 데이터베이스 마케팅의 신기원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SK 혁신가들은 엔크린보너스카드 성공에 만족하지 않았다. 엔크린보너 스카드 출시와 함께 또 다른 혁신 기능 발굴에 몰두했다. 그 즈음 최태원 회장이 최고 사령탑으로 부임했고, 그는 구성원들에게 ‘Deep Change’를 요구했다. 이때 SK주식회사가 내놓은 작품이 OK134 CHAPTER 2. UNIVERSAL SK 이름으로 아시아·태평양지역 에너지·화학사업 선도 1997-2008 캐쉬백이었다. 최태원 회장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 OK캐쉬백은 고객이 OK캐쉬백 가맹점을 이용할 때마다 구매금액의 일정률을 포인트로 적립해 일정수준 이상이 되면 이를 상품 구매에 사용하도록 하거나 현금으로 돌려받도록 하는 적립 서비 스이다. 1999년 3월 서비스를 출시했으며, 이어서 6월 적립장소와 사용범위의 한계를 없앤 통합 마일리지 서비스를 도입해 카드의 활용 폭을 넓혔다. 또 대상 고객을 엔크린보너스카드 회원뿐 아 니라 011, 017 등 이동통신 회원으로 확대했다. 1999년 11월에는 엔크린보너스카드의 누적포인트 와 OK캐쉬백 서비스 포인트를 통합 운영함으로써 포인트 사용기회를 더욱 확대했다. OK캐쉬백 서비스는 SK주유소에 대한 소비자 구매 충성도를 제고하면서 회원 800만 명 이상 을 보유한 SK주식회사의 대표적인 브랜드로 성장했다. 엔크린보너스카드가 정유업계에서 불모지 나 다름없던 카드마케팅을 최초로 시도해 개별 주유소 차원에서 시행되던 일회성 서비스를 정유 사 차원으로 끌어올리고 서비스의 질을 한 단계 높였다면, OK캐쉬백 서비스는 사용금액의 일정률 을 포인트로 적립해 현금으로 되돌려주는 획기적인 아이디어와 더불어 수많은 다른 업종과 제휴 함으로써 국내 최초의 통합마일리지 서비스를 도입하는 등 주유카드의 새로운 개념을 정립했다. 은밀하게 준비했던 비밀 병기 인터넷 사업도 OK캐쉬백 출시 즈음 가시적인 성과를 내고 있 었다. SK주식회사는 인터넷 사용이 날로 확대되는 추세를 감안, 1999년 5월 본격적인 전자상거 래 사업에 진출하기 위해 한국오라클, SKC&C를 솔루션 공급업체로 선정했다. 이를 통해 포털 형 태의 사이버 쇼핑몰을 구축하고 전자상거래 사업을 추진했다. 2000년 1월 1일 포털사이트 ‘OK Cashbag’(www.okcashbag.com)을 열어 OK캐쉬백 서비스를 온라인까지 확대한 것이었다. OK캐쉬백 온라인 서비스는 온라인 소액결제 수단으로 사용이 가능하고 필요 시 현금으로 환급 받는 개념이었다. 또 고객이 웹사이트를 이용하면서 획득한 포인트를 오프라인에서 호환해 사용 할 수 있도록 하는 등 국내 최초로 온·오프라인에서 동시에 적립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서비스였다. OK캐쉬백 사이트는 데이터베이스 마케팅을 기반으로 한 e-Business에도 새롭게 발을 들였다. 쇼 핑, 지역정보, 리빙, 레포츠, 교육, 음악, 건강, 여행, 게임 등 총 9개 단위사업으로 주제별 사이트가 링크되어 풍부한 콘텐츠를 제공하는 포털사이트를 선보였다. 무엇보다 국내 최초로 OK캐쉬백 서 비스와 인터넷 상거래 사이트를 결합한 새로운 차원의 혁신적인 인터넷 사업이었다. 1990년대 초 절박한 심정에서 단행했던 석유마케팅 혁신. 적립금을 현금으로 되돌려준다는 혁 신적인 발상으로 석유사업 최초 고객 구독사업을 실시, OK캐쉬백을 국내 대표 브랜드의 반열에 올 려 놓았다. 혁신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SK주식회사는 카드마케팅 시장점유율 1위를 자랑하는 OK캐쉬백 서비스를 기반으로 인터넷 비즈니스를 카라이프(Car Life) 사업으로 확대했다. 이로써 무겁고 딱딱한 정유회사 이미지를 벗고 마케팅 컴퍼니 전환에 성공, ‘Deep Change’를 달성했다. 135 SK INNOVATION 60YEARS HISTORY BOOK 시기내용 1993.7.1 국내 정유사 최초 BC카드 협약 체결, 유엔아이카드(YU&I CARD) 출시 1997 SK상사, SK유통 등 관계사 인력을 차출하여 인터넷 사업 TF구성 1997.1 엔크린보너스카드 출시 1997.9 출시 6개월 만에 회원수 100만 명 돌파 1998.9 출시 1년 만에 200만 회원 돌파 1999 출시 2년 만에 500만 회원 돌파 1999.3 OK캐쉬백 서비스 출시 1999.5 한국오라클, SKC&C 솔루션 공급업체로 선정 1999.6 OK캐쉬백 통합마일리지 서비스 도입 1999.11엔크린보너스카드+OK캐쉬백 포인트 통합 2000.1.1 OK캐쉬백 온라인(www.okcashbag.com) 서비스 개시 SK의 멤버십 마케팅 변천 OK캐쉬백 서비스 광고OK캐쉬백 온라인 사이트Nex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