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revious08. 선경에서 SK로 비상 020. SK주식회사로 새출발 021. 도약의 새 전진기지, SK 서린동 사옥 022. 운영 노하우를 상품으로, 무형자산 혁명 023. 재계의 거목 최종현 선대회장 영면 024. 정유사 최초 고객가치 추구 ‘OK캐쉬백’ 09. 아시아·태평양 최고 석유화학기업 부상 025. 파라자일렌(PX)으로 글로벌 화학기업 도약 026. 또 하나의 혁신제품 슈퍼팔트, 세계 1위 도전 027. PE-RT 신소재, 자일렌 촉매기술 개발 10. 대한민국 에너지 파워 기틀을 닦다 028. 국가 에너지 동맥, 대한송유관공사 민영화 029. 케이파워 SK전력, 종합에너지 포트폴리오 확장 030. 국내 최초 순수 지주회사, SK엔론 설립 11. 신약·EV 배터리 R&D 끝없는 도전 031. 기약 없는 긴 여정, 바이오 신화에 도전 032. 2차전지 분리막 국내 최초 개발 033. 그린 앵커링의 시작, 미래를 위한 투자 배터리사업 12. 거침없는 해외시장 개척 034. 차이나 인사이더 035. 인니 대통령 직접 선택한, 파트라SK 036. 한일 최대 에너지기업 간 전략적 제휴 13. 에너지 영토 확장 037. 자원개발 최대 성과 브라질 광구 038. 세계 최고(最高) 송유관, 페루 가스전 개발 039. 정유화학기업 최초 순이익 1조 원 달성 040. 인천정유 인수, 아태지역 4대 석유 메이저로 041. 또 하나의 지상유전, 고도화시설 완공 14. 사회혁신 재충전, 행복경영 속으로 042. 소버린 투기자본에 정공법으로 응수 043. 이사회 중심 경영 도입 044. 행복 극대화로 전환한 SKMS 045. SK에너지 이름으로, ‘따로 또 같이’ 046. 내트럭사업에서 화물차휴게소까지 047. 최종현 선대회장의 약속, 울산대공원 시민 품으로2008118 CHAPTER 2. UNIVERSAL SK 이름으로 아시아·태평양지역 에너지·화학사업 선도 1997-2008 08 선경에서 SK로 비상 1997년 유공 사명을 SK주식회사로, 그룹 명칭을 선경에서 SK로 바꾼 것은 로컬 브랜드 이미지를 떨 어내고 명실공히 글로벌 브랜드로 자리잡자는 뜻이었다. 눈부신 혁신성장을 이어왔지만 뛰어 넘어야 할 고정관념, 사업영역, 세계시장의 벽이 여전히 높다는 자각과 함께 본격적인 글로벌 경쟁에 몸을 던 지겠다는 각오였다. 정유사 고객가치 경영의 효시 격인 OK캐쉬백 서비스도 이 무렵 탄생했다. 새로 둥지를 튼 서울 서린동 사옥은 혁신성장과 초일류기업 도약의 전진기지였다. 119 SK INNOVATION 60YEARS HISTORY BOOK “제가 꽤 오래전에 ‘Deep Change or Slow Death’를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어쩌면 이 제는 변화하지 못하면 ‘Slow Death’ 정도가 아니라 ‘Sudden Death’, 요새말로 ‘한 방에 훅’ 가는 이런 일이 일어납니다. 연일 언론을 통해 접하는 일부 회사들 이야기가 남의 일이 아닙니다. 지금 변하지 않으면 나중에 더 큰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그러니 그 변화 자체를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최태원 회장은 1998년 9월 1일 최종현 선대회장의 뒤를 이어 회장에 취임했다. 당시 최 회장은 “혁신적인 변화를 할 것이냐(Deep Change), 천천히 사라질 것이냐(Slow Death)”를 일성으로, 변화의 화두를 던지고 그룹 전반의 체질을 바꾸는 데 주력했다. (그룹확대경영회의 회장 메시지, 사보 <SK>, 2016.7) 생전에 최종현 선대회장은 ‘섬유에서 에너지·화학과 정보통신까지’ 딥 체인지를 이뤄냈다. 그리 고 살아 생전인 1997년 10월 1일, 유공의 사명을 SK주식회사로 변경했다. 당시 그는 격려사를 통 해 “SK는 그룹의 대표기업으로 앞으로 사업영역 확장과 다각화를 고려해 사명에 업종을 표시하지 않았다”고 사명변경의 배경을 설명한 뒤, “우리 모두 새로운 각오로 21세기를 향해 힘차게 전진할 것”을 당부했다. 이어서 1998년 1월 5일, 선경그룹도 SK그룹으로 전환했다. SK 구성원들은 ‘우리 의 다짐’을 통해 진정한 SUPEX추구로 글로벌 시대 세계 초일류 기업을 향해 ‘고객이 OK할 때까지, 세계가 OK할 때까지’ SK라는 이름으로 21세기를 열어 나갈 것을 다짐했다. 지방의 조그만 직물공장으로 출발한 회사가 한국 5대기업으로 성장, SK그룹으로 새출발하는 모습을 모두 지켜본 그는 1998년 8월 26일, 마침내 ‘나무의 숲’으로 돌아갔다. 그로부터 6일 뒤인 9월 1일, SK주식회사는 최태원 대표이사 회장 체제를 맞아 ‘고객과 세계가 OK할 때까지’를 기치로 내걸고 새로운 혁신시대를 열어 나갔다. 020. SK주식회사로 새출발 유공은 회사명을 SK주식회사로 바꾸고 세계 초일류 기업을 향한 힘찬 도약을 선언했다. 1997년 10월 1일, 잠실 올림픽공원 내 역도경기장에서는 최종현 선대회장, 김항덕 부회장, 손길승 경영기 획실장, 조규향 사장 등 구성원 및 관계자 2,0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신 CI 선포식이 열렸다. 김항덕 부회장은 21세기 전략을 선포하면서 “유공은 지난 1962년 국내 최초의 정유사로 탄생 한 이래 35년간 에너지 화학제품의 안정적 공급을 통해 국가 경제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해왔다” 고 말하면서, “CI 변경을 계기로 SK를 21세기를 주도해 나갈 기업으로 키워 나가자”고 말했다. 선포 식에서는 SK주식회사의 출범과 함께 유공해운은 SK해운으로 흥국상사는 SK에너지판매, 유공가 스는 SK가스, 유공옥시케미칼은 SK옥시케미칼로 각각 사명을 변경했다. SK주식회사는 선포식에서 ①고정관념의 벽 ②사업영역의 벽 ③세계시장의 벽 등 3가지 벽을 120 CHAPTER 2. UNIVERSAL SK 이름으로 아시아·태평양지역 에너지·화학사업 선도 1997-2008 깨는 것을 골자로 한 21세기 중장기 전략을 발표하면서, 2005년까지 매출액을 27조 원으로 늘리 고, 해외 매출비용도 전체 매출액의 40% 이상으로 높이기로 했다. 이와 함께 ①카드마케팅 서비 스 확대, 주유소 개선 등 고객만족 극대화 달성 ②천연가스 발전 및 환경사업 등 신규 유망사업 적 극 추진 ③동남아, 중국 등 해외시장 적극 진출 등에 역점을 두기로 했다. “지금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시대는 국가 간의 경제 장벽이 사라지고 전 세계가 하나의 시장이 되 는 글로벌리제이션 시대입니다. 이 시기는 우리에게 위기가 될 수 있는 한편, 세계 일류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는 좋은 기회도 될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새로운 각오와 노력이 요구되는 것도 이 때문이며, 지금이야 말로 우리의 잠재력을 확인해볼 수 있는 기회인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SK 의 이름으로 새롭게 출발합니다. 우리가 그룹의 이름을 바꾼 것은 단순히 이름을 하나로 통일시키는 의미가 아니라, 오늘의 어려 움을 극복하고 반드시 세계 일류기업이 되겠다는 각오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CI가 통일됨에 따라 각사는 ‘SK’라는 브랜드의 유지·발전을 위한 책임과 의무가 더욱 무거워진다는 사실을 깊이 명심 해야 할 것입니다. 이제 SK는 국내는 물론 세계에서도 고객의 신뢰를 받을 수 있는 브랜드로 확고 하게 뿌리를 내려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고객의 기대를 앞서가는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우리의 마음가짐과 행동양식을 변화시켜 ‘SUPEX 수준’의 경영성과를 거둘 때 ‘세계 일류기업 SK’라는 목표도 달성될 수 있을 것입니다.” (최종현 선대회장, SK그룹 출범 CI 선포식 기념사, 1998.1.5) SK주식회사 출범과 함께 선경그룹도 SK그룹으로 전환했다. 1998년 1월 5일 쉐라톤워커힐에서 최종현 선대회장을 비롯한 구성원 1,0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신 CI 선포식 및 경영혁신 결의대 회를 갖고 SK그룹의 새출발을 다짐했다. SK주식회사의 새출발은 국가 간 경제장벽이 사라지고 전 세계가 하나의 시장이 되는 무한경쟁시대를 맞아 당당히 세계시장에 도전하여 그 벽을 넘어서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1990년대 들어 WTO체제의 출현, 우리나라의 OECD 가입 등으로 그동안 국 내기업을 보호해주던 울타리들이 없어졌다. 새롭게 전개되는 글로벌 경쟁에 대응해 기업들은 각 자 경쟁력을 구축하고 생존과 성장을 도모해야만 했다. 이른바 ‘글로벌리제이션’의 시대에 과감히 세계 무대에 뛰어들어 본격적인 경쟁을 펼치기 위한 마케팅전략 차원에서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 응하는 브랜드의 국제화가 요구되고 있었다. 특히 글로벌 시장에서 코카콜라, 맥도널드, 도요타, IBM 등은 브랜드 가치를 자랑하며 무형이 아닌 실재로서의 위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반면에 SK주식회사는 사업구조가 석유업종에 치중되 어 있고 국영기업의 보수적인 이미지가 여전히 남아있는 등 대외적으로 인식되는 이미지가 무거 운 데다 세계적인 메이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에 아직 브랜드 파워가 부족했다. 따라서 브랜드 이미지의 한계를 극복하고 글로벌 시대에 인정받는 경쟁력을 갖춘, 세계 일류기업으로 거듭나기 121 SK INNOVATION 60YEARS HISTORY BOOK SK주식회사 신 CI 선포식에 참석한 최종현 선대회장(1997.10.1) SK그룹, 신 CI 선포식 및 경영혁신 결의대회(1998.1.5)122 CHAPTER 2. UNIVERSAL SK 이름으로 아시아·태평양지역 에너지·화학사업 선도 1997-2008 위해 SK주식회사로 CI 체계를 변경하게 된 것이었다. SK주식회사는 CI 선포에 맞춰 CI 론칭광고를 방송매체에 내보냈다. 초창기 방송된 광고는 ‘한국 의 힘-유공’이 ‘한국의 힘-SK’로 새롭게 도약한다는 점을 쉽고 강하게 표현하는 데 역점을 두고 제 작됐다. 1998년부터는 변경된 사명의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해외광고도 실시했다. 제품 판매나 업 무 연관성이 높은 해외 전문지, 일간지, 잡지 등을 대상으로 영어, 중국어, 러시아어, 스페인어 광고 도 진행했다. 그러나 SK주식회사는 출범과 함께 IMF 외환위기 암초에 부딪쳤다. 경기침체에 따라 국내 석유 수요가 대폭 감소했고, 국제 석유제품 가격의 하락으로 정제 마진마저 악화됐다. SK주식회사는 1998년부터 조직과 인력을 혁신적으로 개편하고 원가절감을 통한 경쟁력 강화 그리고 설비의 안정적 가동에 만전을 기했다. 1999년부터는 최태원 회장의 주도 아래 ‘도태될 것 인가, 변화할 것인가(Deep Change or Slow Death)’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새로운 혁신에 나섰다. 이는 새로운 경제환경에 적응해 기업가치를 제고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스스로 가치 를 창출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절박한 인식에 따른 것이었다. 먼저, 기존사업 및 신규사업의 핵심역량을 강화했다. 고객과 함께 하는 경영활동을 펼침으로 써 고객가치 창출에 힘을 기울였으며, 동시에 그동안 축적된 각종 노하우 등 무형자산을 신규 사 업화하는데 집중해 신규사업 배양 능력을 키워 나갔다. 두 번째 혁신으로 SK주식회사는 ‘고객서 비스 강화’를 추진했다. 정유업계 최초로 전국적인 고객서비스망을 구축하고 ‘고객이 OK할 때까 지’ 뛰겠다는 ‘OK! SK!’ 실천에 착수했다. 아울러 새롭게 개발한 품질경영시스템 QMS-M(Quality Management System for Marketing)을 이용, 전국 25개 권역 고객센터 간의 정보를 공유하고 본 사 고객상담실과 유기적으로 연결해 고객의 불만에 즉각적으로 대처할 수 있도록 했다. 고객서비스 강화와 함께 세 번째 혁신은 지속적인 구조조정 노력이었다. 주요 계열사 지분 해외 매각, 해외투자 유치, 비핵심 자산 매각 추진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그룹차원의 구조조정 계획 을 착착 진행해 나갔다. 그 결과 SK주식회사는 IMF 외환위기의 경기침체 속에서도 내실있는 경영성과를 다져 나갔다. SK주식회사 출범(유공 → SK주식회사)IMF 극복 전략 •일시: 1997년 10월 1일 •주요 행사 및 의미 - SK주식회사 출범, 신 CI 선포식 개최 - SK주식회사의 의미: (최종현 회장) 'SK 대표기업이라 업종을 표시하지 않았다' - 21세기 중장기 전략 ①고정관념의 벽 ②사업영역의 벽 ③세 계시장의 벽을 넘어 세계 초일류로 - CI 론칭광고, ‘한국의 힘-SK’로 새롭게 도약 강조 - 슬로건: ‘도태될 것인가, 변화할 것인가(Deep Change or Slow Death)’ - 전략: ①기존사업 및 신규사업의 핵심역량 강화 ②‘고객이 OK할 때까지’ ‘OK! SK!’ 실천 ③구조조정 지속 추진 - 성과: ①미국 <포춘> 선정, 세계에서 가장 신망받는 기업 ②외 자유치(엔론 합작) ③국제 신용등급 회복 SK주식회사 출범과 IMF 외환위기 극복 전략123 SK INNOVATION 60YEARS HISTORY BOOK 1998년 10월, 미국의 <포춘>이 뽑은 ‘세계에서 가장 신망받는 기업’의 하나로 선정되면서 경제위 기 속에서도 안정된 기업 이미지를 고객에게 각인시킬 수 있었다. <포춘>은 당시 21개 산업부문 에서 신망받는 278개 기업을 선정해 발표했는데, SK주식회사는 10점 만점에 4.46점을 받아 정유 부문에서 14위를 기록했고, 한국기업으로는 삼성전자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점수를 받았다. 달러에 목말랐던 시절, 외자유치 능력에서도 탁월한 실력을 입증했다. IMF 관리체제에서 하루 라도 빨리 벗어나고자 정부가 직접 나서 외자유치를 강조했고, 기업들도 외자 도입에 골몰했다. 이때 SK주식회사는 당시 미국 유수의 에너지기업이었던 엔론(ENRON)로부터 3억 달러를 유치, SK엔론이라는 합작회사를 설립함으로써 외자유치의 모범을 보였다. 그 덕에 외환위기의 영향을 크게 받지 않고 양호한 경영실적을 거둘 수 있었다. 1999년 상반기에만 3,000여 억 원의 이익을 거뒀는데, 이는 IMF 외환위기 이후 2년여 만에 거둔 창사 이래 최대의 실적이었다. 국제 신용등급도 빠르게 회복됐다. 1999년 5월 6일, 미국 무디스는 SK주식회사의 신용등급을 ‘Baa3’으로 상향 조정했다. 이 등급은 당시 국내 민간기업이 받은 신용등급으로는 가장 높은 수준 이었다. CI 선포와 함께 재장전에 들어간 혁신 2년, SK주식회사는 IMF 외환위기를 슬기롭게 극복 하고 지속성장의 뉴 밀레니엄을 향해 힘차게 나아갔다. 021. 도약의 새 전진기지, SK 서린동 사옥 서린동 SK빌딩은 SK문화를 구현한 최첨단 IBS 건물로,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는 SK주식회사의 혁신 공작소이다. 지하 7층, 지상 36층, 옥탑 2층 규모에 연면적 2만 3,655㎡, 지상높이 160m의 건물로 준공 당시 인근 빌딩들 가운데 단연 돋보이는 최고층의 위용을 자랑했다. 서린동은 IMF 외 환위기 당시 빌딩을 매입해 입주한 외국기업들을 중심으로 글로벌타운을 형성했고, 지하철 1호선 종각역 인근 수려한 청계천을 온몸으로 품고 있다. 건물의 부가가치를 간직하면서도 업무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는 실용적인 혁신공간을 구현한 SK빌딩은 차별화된 건물의 정체성을 대외적으로 인정받으며 2000년 지식오피스 종합대상 최고상(국무총리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선경을 만나기 이전 대한석유공사의 본사는 울산 Complex가 위치한 울산 남구 고사동에 소재 해 있었다. 1980년 12월 23일 오후 6시 30분, 최종현 선대회장이 사장 취임식을 가졌던 유공 본 사는 임대 건물이었다. 2002년 하나은행에 합병된 서울신탁은행 본점 빌딩(현 하나은행 명동영 업부)으로, 엄밀히 따지면 대한석유공사의 서울사무소였다. 최종현 선대회장은 당시 정부와 언론에 약속했던 ‘유공 정상화 3년’ 기간을 지켜내고 유공 서울 본사 시대를 열었다. 1983년 5월 21일, 유공 창립 20주년 만에 서울의 중심 여의도 1번지에 자체 사옥을 마련한 것이었다. 서린동으로 옮겨 가기 이전 16년 동안 ‘유공빌딩’으로 사람들의 입에 오 르내리던 당시 신사옥은 수직계열화의 업적을 이룩한 혁신의 전당이었다. 124 CHAPTER 2. UNIVERSAL SK 이름으로 아시아·태평양지역 에너지·화학사업 선도 1997-2008 1999년 완공된 서린동 SK빌딩 전경 Memoir 60주년 추억담 ‘유공천세(油公千歲)’ 지속가능한 행복한 회사를 만들겠습니다 최환준 SK이노베이션 사업개발담당 리더 ● SK이노베이션은 60년간 대한민국의 경제발전에서 No.1 에너 지·화학회사로서 선진 경제로의 도약에 중추적인 역할을 해 왔습니다. 수출 확대, 글로벌 생산기지 구축 등을 통하여 세계경제에도 기여하는 우리 회사를 보며 구성원으로서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게 됩니다. 개인적으로 1997년 IMF 외 환위기 당시 회사 유동성 위기 극복을 위해 자금 파이프라인 확보에 진력했던 일, 지주회사 전환을 위해 다양한 이슈 를 검토하고 실행했던 일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지금도 25층 War Room에 걸려 있는 ‘유공천세(油公千歲)’라는 액 자를 보며 지속가능한 회사를 만들어 가는 것이 구성원과 이해관계자의 행복을 위하여 얼마나 중요한지 돌아보게 됩 니다. 2030년까지 ‘Carbon to Green’의 성과창출을 통하여 글로벌 선도회사가 되어야 합니다. 국내외 우수 인재들이 몸담고 싶어하는 ‘행복한 회사’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125 SK INNOVATION 60YEARS HISTORY BOOK 그러나 유공 인수 11년 만에 수직계열화 완성에 성공한 선경그룹의 사세는 이전과 비교하지 못 할 만큼 커져 버렸다. 그렇게 불어난 사세를 유공빌딩이 제대로 담아내지 못했고, 그 바람에 많은 그룹사가 둥지를 찾아 전전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이때 최종현 선대회장은 여기저기 흩어져 있 던 그룹사를 한곳에 모아 그룹의 역량을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그렇게 해서 서린동 신 사옥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혁신의 새 전진기지 서린동 SK빌딩은 1997년 10월 그 위용을 드러낸 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최종현 선대회장은 생전에 그 모습을 지켜보지 못했다. 대신 새로운 사령 탑을 모신 SK그룹 회장실이 서린동 SK빌딩으로 이전, 21세기 SK를 이끌어갈 새로운 본사로서의 거점을 구축했다. 계열사들도 SK그룹 사옥에 입주를 시작하면서 부문별로 나눠진 그룹업무를 한 곳으로 통합할 수 있었다. 특히 SK를 대표하는 핵심 축의 하나인 에너지·화학사업의 SK주식회사 가 기존 여의도 사옥을 떠나 서린동 신사옥에 입주함으로써 서린동 SK빌딩은 명실상부한 본사 사 옥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됐다. 무엇보다 서린동 SK빌딩은 권력의 이동을 상징하는 의미 있는 공간이었다. 선경에서 SK로의 완전한 전환이었고, 주식회사 선경에서 SK주식회사로 그룹 무게 중심도 함께 이동했다. 선경의 대표기업이었던 주식회사 선경(현 SK네트웍스)은 선경직물로 출발한 SK의 모태로서 오 랫동안 그룹 회장실을 보좌해 왔지만, 무심한 세월이 흘러 에너지·화학으로 딥 체인지에 성공한 SK주식회사로 그룹의 중심이 완전히 넘어갔다. 도약의 새 전진기지 SK빌딩에서 ‘Deep Change or Slow Death’를 선포한 최태원 회장의 새로운 혁신 시대가 열린 것이었다. 이후 SK빌딩은 24년 동안 늘 혁신의 긴장을 늦추지 않고 SKMS와 SUPEX추구를 실천해온 SK 구성원들과 동고동락해 왔지만, 부동산 명의에 있어서는 다소 애환이 있었다. 메릴린치 컨소시엄 에 한차례 매각된 사연이 있었다. 인천정유 인수 및 고도화 설비투자에 따른 자금조달의 일환으로 2005년 사옥을 매각한 바 있었다. 당시 금융권에서 돈을 직접 빌리는 대신 본사 사옥을 담보로 부 채 없이 투자자금을 마련한다는 현실적 전략에 따른 결정이었다. SK주식회사는 신한은행 메릴린 시기내용 1962.10 울산 정유공장 내(울산 남구 고사동) 1980.2서울신탁은행 본점 건물(서울사무소 임시 본사로 활용) 1983.5.21 유공빌딩(여의도 1번지) 1992 신사옥 프로젝트 설계 및 착공(서울 종로구 서린동) 1999.10 SK빌딩 준공(지하 7층, 지상 36층, 옥탑 2층 규모의 최첨단 IBS 건물) 2005 사옥 매각(인천정유 인수 및 고도화 설비투자 계기) 2011.2사옥 재매입(대체투자 펀드로 공동 매입) 2021.6 사옥 완전매입(SK리츠) SK주식회사 사옥 변천Next >